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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7월 완공 `춘천신사'
원형 보존한 채 호텔로 사용
주춧돌·난간 등 흔적 곳곳에

“무조건 철거 주장하기보다
과거 교훈 삼아야” 의견도


일제 잔재인 강원신사(춘천신사) 터가 광복 후 7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14일 오전 춘천 세종호텔 뒤편에는 약 10㎡ 너비의 주춧돌과 난간 위로 1m 남짓의 석재 불상이 서 있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국폐신사인 강원신사 본전이 있던 터다. 주춧돌과 난간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불상은 1960년 이후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신사의 흔적은 호텔 외부 곳곳에 남아 있었다. 호텔 정문 계단과 정문은 강원신사 당시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정문 계단 인근에는 지붕이 철거된 수수사(신사 참배 전 손을 씻는 수도 시설)도 있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에 따르면 1919년 일제는 내선일체를 강화하고 조선인을 황국신민화하려는 의도에서 전국 곳곳에 신사를 건립했다. 1916년부터 추진, 1919년 7월 완공된 춘천신사는 신전 3평, 배전 15.5평 규모로 건축됐다. 1936년 대규모 증축을 통해 강원신사로 격상됐고 이 과정에서 춘천이궁(離宮), 춘천부 관아의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다.

일제는 1945년까지 전국에 관폐신사 2곳(1곳은 미완공), 국폐신사 8곳, 호국신사 2곳, 신사(神社) 70곳, 신사(神祠) 1,062곳을 지었다. 강원신사는 전국의 국폐신사 중 4번째로 지어졌다.

광복 이후 전국 대부분의 신사는 사라졌다. 특히 관폐신사와 국폐신사 10곳은 대부분 철거 후 공원·학교 등으로 바뀌었지만 강원신사만 원형의 모습을 일부 간직한 채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1946년 강원신사 배전은 춘천부립도서관으로 사용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춘천에 남은 일부 친일파가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후 1948년에는 미군공보원으로 사용됐고 1956년 (주)강원관광이 설립되며 호텔이 들어섰다.

오동철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사무국장은 “무조건 철거를 주장하기보다 남겨서 과거의 교훈으로 삼을 수도 있다”며 “최근 춘천이궁 복원 목소리와 더불어 강원신사의 처우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중요한 것은 춘천이궁이 있었고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신사가 건립됐다는 사실 등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며 “이곳이 신사였다는 점을 알리는 역사 안내판 등의 설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명록기자 amethy@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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