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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지나쳐온 시간은 제자리에 남겨두고 다가오는 세계를 순간마다 새겨두라”

양양 출신 이상국 시인 여덟 번째 시집

삶의 근원 되새기는 시적 성찰 고스란히

양양 출신 이상국 시인(사진)이 5년 만에 여덟 번째 시집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을 상재했다.

예스러운 전경(全景)을 품에 안은 69편의 작품이 독자들의 곁을 찾는다. 이 시인의 작품은 하나같이 삶의 근원적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소재들도 이 시인의 시어를 만나면 삶의 여정을 곱씹게 만드는 영감이 된다. 세월을 핑계 삼아 독자를 함부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 그의 태도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작품 '국수 법문'. 평생 오백원에 국수 한 그릇을 팔았다는 종로 어디쯤의 '보살'은 이승을 떠나고서야 그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 이유가 드러난다. 젊어서 집을 나간 남편이 돈이 없어 집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어디서 배곯진 않을까 했다는 오래된 이야기. 원망에서 시작해 걱정으로, 그러다 평생의 업이 됐던 한 여인의 궤적이 한 장의 종이 위로 압축된다.

물론 양조장 다리 건너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돌아가던 고향 '물치'의 면사무소를 비롯해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고향의 하루 등 그 시절 삶을 그리는 소박한 이야기도 함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에 그치지 않는다. 또 지나쳐 온 시간을 제자리에 남겨두고, 또 다가오는 세계를 순간마다 새겨두라고 안내한다. 저물어 가는 생애를 아쉬워하지 않는 이는 없겠지만서도 돌아가지 말고 자꾸 나아가 보라는 그의 메시지가 오롯이 닿는 이유다.

이상국 시인은 “시는 나에게 사물의 배후나 삶의 은밀한 거처가 되길 바라지만 나는 늘 길 위에 있거나 말 속에 말을 숨길 줄 모른다”며 “그러다 보니 나 자신도 가리기가 쉽지 않아 여기저기 나무도 심고 집을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며 1976년 '심상'에 '겨울 추상화'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동해별곡' '내일로 가는 소' '우리는 읍으로 간다' 등을 펴냈으며, 백석문학상, 민족예술상, 정지용문학상, 강원문화예술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창비 刊. 124쪽. 9,000원.

김수빈기자 forest@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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