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자칼럼 신호등]‘협치’를 읍소할 때

최기영 정치부 차장

선거는 끝났다. 으레 선거가 끝나면 ‘이제 분열과 갈등은 접고 국민통합을 이루자’고 말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데만 몰두한 이번 선거 과정을 돌이켜보면 통합과 협치는 사실 ‘공허’하게 들린다. 거대 양당 체제에서 비롯된 정치의 양극화는 이제 디폴트 밸류(default value·초기값)로 고착화된 것 같다.

충격적이기까지 한 이번 선거의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대선 윤석열 대통령의 신승, 지방선거 국민의힘 압승 이후 승패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불과 2년’ 만에 벌어진 일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욱 이례적이다. 복기해보면 2년간 정부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눈에 독선으로 비쳤다. 인사 실책과 물가 등 민생 현안에서 비롯된 논란은 물론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의대 증원까지 오히려 선거에 악재가 되고 말았다. 선거 기간 논란을 빚었던 민생토론회의 약속은 청구서가 돼 정부에 날아들 것이다.

아무튼 이번 선거 결과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정치 지형이 열리게 됐다. 22대 국회가 앞으로 정치에 미칠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2년 만에 심판의 대상이 된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뼈아프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통령의 가장 막강한 권한인 예산안 수립과 인사권 행사마저 야당 협조 없이는 뜻대로 할 수 없다. 물론 지난 2년도 여소야대였다. 하지만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임기 초와 선거를 통해 정권심판론의 실체가 확인된 지금 시점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더이상 야당의 발목 잡기를 언급할 수 없다.

야당의 공세에 여당 내부의 원심력까지 강해질 수 있다.

총선 결과가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도정에 미칠 영향도 상당할 전망이다. 마침 김진태 도정은 7월 임기 후반기를 맞는다.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야 할 시점에서 가혹한 정치 구도를 마주했다. 여소야대는 더욱 공고해졌고 대통령실과 여당의 버프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원군 없이 김진태 지사의 정치적 개인기와 강원특별자치도, 18개 시·군의 자체 역량으로만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을 논의해야 한다. 강원특별자치도의 특례 확대는 국회의 입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총선을 앞둔 지난해 2차 개정과 달리 야당이 특별법 개정에 순순히 협조할 명분이 부족하다. 거대 야당의 협조를 구할 논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올 6월 태백 장성광업소, 내년 6월에는 삼척 도계광업소가 완전 폐광을 앞두고 있다. 폐광지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자 산업화의 주역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겪어 온 희생에 비례하는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고용위기지역, 산업위기대응지역 지정을 통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추진 중이지만 이마저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투명하다. 석탄 시대의 종말을 앞두고 폐광지의 소멸을 막기 위해선 통합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서두에서 통합과 협치는 공허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지만 강원도 입장과 여건을 감안하면 초당적 협력은 절실하다. 정치의 묘를 살려 협치를 읍소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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