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화천댐의 그늘

최문순 화천군수

발전용 댐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지만 안보와 같은 완전한 공공재는 아니다. 수혜자가 있는 동시에 댐 소재지에 피해자가 발생한다. 10억톤의 저수용량과 연간 32만6,000㎿ 규모의 발전시설을 갖춘 화천댐은 휴전 이후 대한민국의 중요한 전력 공급원이었고 이후 산업화의 성공을 이끈 견인차였다.

동시에 댐으로 인한 피해도 축적돼 왔다. 강원대 산학협력단 연구팀의 조사 결과 1954년부터 2022년까지 69년에 걸쳐 모두 3조3,359억원에 달하는 직간접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480억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다. 7.91㎢에 달하는 농경지와 266동의 가옥이 수몰됐고, 1,400여명의 이주 주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다. 교통 분야 피해도 지역 주민들에게 전가됐다. 수몰된 도로의 총연장은 60㎞에 이른다. 간동면과 화천읍 산간마을은 지금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고립된 상태다.

반면 댐으로 인한 효용은 피해 수준을 한참 밑돌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1965년 이후 현재까지의 전력 생산 규모는 1,525만6,341㎿, 전력 판매 금액은 약 2조5,000억원으로 추정됐다. 단순 비교만으로도 피해가 효용 대비 1조원 가까이 크다. 나아가 6·25전쟁 당시 폭격까지 당했던 화천댐의 안전진단 결과는 아직 지역 주민들에게 제대로 공개된 바가 없다.

수원지에만 피해를 오롯이 떠넘기고 있다는 불만도 크다. 단적인 예로 ‘물의 나라’로 불리는 화천군의 상수도 보급률은 전국 군 단위 지자체 중 최하위권인 68.1%다. 당장 2027년부터 통합 상수도 시설공사를 위해 총 894억원을 지방비로 충당해야 한다. 물은 많지만 수자원 이용을 위한 기반 조성 예산이 부족해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댐 소재지가 바로 화천이다.

수몰된 지역은 지금이라도 댐이 해체되면 비옥한 옥토로 사용될 수 있으며, 동서고속화철도 화천역 건설과 연계해 새로운 주거단지 조성에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요지다. 과거와 달리 현재 화천댐이 국가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 주민이 ‘차라리 화천댐이 없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특정 지역이나 기업의 이득을 위해 댐 소재지에 매년 누적되는 피해를 계속 방치할 것인지 고민할 시점이 됐다. 화천군민 역시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이 나라의 국민이다.

정부가 수도권에 500조원의 재원을 집중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2035년부터 하루 60만톤의 화천댐 물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은 화천군민을 포함해 국민이라면 누구나 바라 마지않는 국책사업이다. 그러나 반도체 클러스터에 화천댐 물을 쓴다고 하면서 주민들은 또 한 번 ‘패싱’당했고, 화천댐으로 인해 쌓인 상처는 다시 한 번 ‘방치’됐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대한민국 미래 100년의 먹거리가 될 것이 명징하다. 하지만 화천댐으로 인한 피해를 100년간 화천군이 온전히 짊어지는 것은 결코 온당치 않다. 상처를 봉합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합리적 대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도 웃고, 화천군민들도 행복해지고, 국가의 산업 경쟁력 역시 부강해지는 호혜적 해법을 찾는 지혜가 절실하다. 검게 드리워진 화천댐의 그늘을 이제 걷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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