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창간 79주년 특별 기획]남편 앗아간 탄광…삶의 터전이 되다

광산사고로 가장 잃은 여성들에게 선탄부 취업 배려
폐광 앞둔 태백·삼척…광부이자 엄마·아내의 삶 조명

올해 6월 태백 장성광업소, 내년 6월 삼척 도계광업소가 연이어 문을 닫는다. 한때 석탄산업은 산업화의 주역이자 구국의 에너지였다. 6·25전쟁부터 1960년대 경제개발, 1970년대 석유파동, 1998년 IMF 외환위기까지 에너지 위기마다 석탄산업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폐광은 산업화가 낳은 모순이다. 석탄산업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올랐고 이제 국민 대부분이 잘살게 됐지만, 탄광촌은 오히려 존폐의 위기까지 몰리고 있고 주민들은 여전히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강원일보는 태백과 삼척의 완전 폐광을 앞두고 창간 79주년 특별기획 ‘광부엄마’를 연재한다. 광업소의 유일한 여성 노동자인 ‘선탄부’는 광부이자 엄마, 아내였고 산업재해의 피해자였다. 선탄부의 삶을 추적하며 석탄산업의 역사, 폐광지의 아픔과 모순을 돌아본다. 또 취재팀이 제작한 동명의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도 선보인다.

◇지난 15일 태백 장성광업소 철암역두 선탄장. 탄광 내 유일한 여성 노동자인 선탄부들이 쏟아지는 석탄 더미에서 일사불란하게 정탄을 골라내고 있다. 태백=신세희기자

■탄광촌의 터부=죽음의 위험이 일상화된 탄광촌에서는 수많은 터부 역시 일상이다. 여성은 막장에서 일할 수 없다. 탄광촌에서 여성은 큰소리를 낼 수 없었다. 또 광부들의 출근길에 여성은 길을 앞서 갈 수 없다.

아내가 싼 광부의 도시락은 반드시 세 주걱 또는 다섯 주걱이어야 하며 네 주걱은 피한다. 도시락 보자기는 꼭 청색과 홍색이어야 한다.

광부 남편이 출근하면 아내는 남편의 다른 신발들은 모두 집 안을 향해 돌려놓았다. 전근대사회의 불문율은 대부분 미신으로 치부되며 사라졌지만 탄광촌에서는 아직도 일부 남아 있다. 삶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막장의 두려움과 산업전사의 자긍심이 교차하는 곳, 그만큼 치열한 삶의 공간이 갖고 있는 모순이었다. 선탄부는 이 모순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여성 광부이자 엄마, 아내=탄광촌의 삶은 광부의 강도 높은 노동과 위험에 의존했고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자리는 거의 없었다. 여성의 입갱은 법적으로 철저히 금지된다. 하지만 여성 광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하 막장에서 막 올라온 석탄 더미에서 상품성이 있는 석탄과 잡석 등을 가려내는 선탄부는 지금도 여성만의 전유물이다. 이들이 일하는 공간은 지상 막장이며 이들은 탄광의 유일한 여성 노동자다.

한때 이들 대부분은 광산사고로 남편을 막장에 묻은 산업재해의 피해자들이었다. 가장을 잃은 일가족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한 나름의 배려였다. 또 이들은 광부이자 집에서는 가사를 책임지는 엄마, 아내였다. 폐광지와 선탄부는 묵묵히 희생을 받아들여 왔다. 폐광이 석탄산업과 현대사의 모순이라면 광부엄마 선탄부의 삶은 탄광촌의 모순인 셈이다.

정연수(강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은 “1980년대까지 6만 광부가 있었는데 1년에 200명 가까이 사고로 사망했다. 또 1년에 300명은 진폐증으로 숨을 거둔다. 광부의 삶이 숭고하면서도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 알 수 있는 수치”라며 “탄광촌 전체가 남성 중심으로 살아가고 여성들은 억압돼 있었지만 여성 선탄부는 탄광의 어엿한 구성원이자 엄마, 아내로 폐광지의 삶 그 자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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