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임현택 "의대 증원 백지화 안하면 어떤 협상도 안 해…정부의 권력 남용으로 촉발된 의료 농단"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 깨닫는다면 국민과 의료계에 사과하라"
의대 교수들 주1회 휴진…의대 증원 발표시 휴진 기간 재논의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차기 회장 당선인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제76차 정기대의원 총회에 참석해 당선인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속보=의과대학 증원을 둘러싼 의정(醫政) 갈등이 2개월 넘게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임현택 차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당선인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지 않으면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임 당선인은 2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열린 의협 제76차 정기 대의원총회에 참석해 "한국 의료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고 있는데도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한 자세를 취하기는커녕 의료 개혁이라며 의대 정원 증원 2천 명을 고수하고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강행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임 당선인은 "이건 의정 갈등이 아니라 오로지 정부의 일방적인 권력 남용으로 촉발된 의료 농단"이라며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면 하루빨리 국민과 의료계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2025년도 의대 모집 정원을 증원분의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하면서 '2천명 증원'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의료계는 이러한 방안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지난 25일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한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도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참여하지 않았다.

임 당선인은 "정부가 우선적으로 2천명 의대 증원 발표,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백지화한 다음에야 의료계는 원점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의료계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42대 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임 당선인은 의료계 안에서도 대표적인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사다.

공식 임기는 내달 1일 시작되지만,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사실상 업무를 종료하고 이날 대의원회에서 해산하는 데 따라 임 당선인 측이 이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해온 임 당선인이 취임하면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임 당선인 측은 최근 의대 교수들의 휴진 등 결의와 관련해 정부가 "관계 법령을 위반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자 복지부가 의대 교수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며 거칠게 반발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임 당선인의 회장직 인수를 돕는 의협 인수위는 전날 "보건복지부가 의대 교수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교수님들께 동네 양아치 건달이나 할 저질 협박을 다시 입에 담을 경우 발언자와 정부에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수위는 성명을 통해 "복지부가 교수님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겁박한 것에 대해 매우 분노한다"며 "의대 교수님들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14만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하나로 뭉쳐 총력을 다해 싸울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편, 교수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를 하지 않으면 환자가 정리되는 대로 사직하겠다며 당장 주 1회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주요 병원 교수들은 이달 마지막 주부터 주 1회 휴진 등을 통해 진료와 수술 일정을 추가로 줄인다.

20여개 의대 교수가 속한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 26일 총회 후 외래 진료와 수술, 검사 일정 조정과 당직 후 24시간 휴식 보장을 위한 주 1회 휴진, 경증 환자 회송을 통한 교수 1인당 적정 환자 유지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전의비는 "정부는 여전히 근거 없는 의대 증원을 고집하며 전공의의 복귀를 막고 있다"며 "교수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무시하고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할 경우 휴진 참여 여부와 휴진 기간에 대해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빅5'로 불리는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 교수들은 당장 다음 주에 하루 쉰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오는 30일,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5월 3일을 휴진일로 잡았다. 삼성서울병원 교수들은 초과 근무 여부에 따라 개별적으로 하루를 골라 쉬기로 했다.

한 빅5 병원 교수는 "환자 예약이 6월까지 차 있어서 그때까지만 진료를 보고 병원을 떠날 예정이라 신규환자 예약을 받지 않는 등 진료를 줄이고 있다"며 "시간은 지나가는데 변하는 게 없으니 교수들이 힘이 빠져있다"고 푸념했다.

빅5 병원 외에도 충북대병원 교수들은 이미 이달 5일부터 금요일마다 개별적으로 쉬고 있다. 충남대병원과 원광대병원 교수들은 지난 26일부터 매주 금요일에 쉬기로 했다.

고려대 의대 소속 교수들은 오는 30일부터 주 1회 휴진을 시작하기로 했다.

고려대 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현 상황이 학생과 전공의가 피해 없이 복귀할 수 있는 최종 시점인 5월 말까지 지속된다면 고려대 의료원 교수들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진료 형태를 변경할 예정"이라며 진료 축소가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건양대병원과 계명대 의대 부속병원 교수들은 일단 다음 달 3일에 하루 쉬기로 했다. 강릉아산병원 교수들은 5월 3일부터 주 1회 휴진한다.

◇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해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26일 대구 한 대학병원 수술실 앞에서 보호자가 의사에게 수술 경과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대 교수들이 휴진을 예고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는 의료개혁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5일 출범한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 4대 의료개혁 과제를 논의하겠다면서도, 최대 쟁점인 의대 정원 문제는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전병왕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제1통제관은 중대본 브리핑에서 "정부는 의료개혁의 문제를 미래세대에 전가하지 않도록 책임감 있는 자세로 개혁은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전 통제관은 "(특위에서) 4대 과제를 속도감 있게 논의해 상반기 내 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도,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특위 산하 전문위원회에서 논의할지 여부는 향후 결정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노연홍 의료개혁특위 위원장도 지난 25일 첫 회의 후 "특위는 의료체계와 제도 개혁을 조금 더 큰 틀에서 논의하는 기구"라며 "의료인력 수급 조정 기전(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의견을 나눌 수 있지만, 구체적인 의대 정원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기구는 아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전 통제관은 또 의대 교수들이 요구하는 '의대 증원 백지화'는 대학입시 일정상 불가능하다고도 밝혔다.

그는 "4월 말이면 2025학년도 입학정원은 거의 확정될 것"이라며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논의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 의료계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된 안을 제시하면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대 교수들의 주 1회 휴진 예고에 대해서는 "집단행동이 관계 법령을 위반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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