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활성 효과 미미
지방재정 안전 저해
제도개선 지속 제기
올 5월 청와대 게시판에는 적폐제도를 없애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2009년도 탄생 적폐제도(?), 신속(조기)집행 폐지를 간절히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게시됐다. 참여인원이 20만명이 돼야 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한 채 한 달 후 마감됐다. 상명하복의 공무원 특성상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폐지를 요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신속집행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에 200% 공감하며 정부가 신속하게 이 제도를 폐지해 주길 촉구한다.
신속집행이라는 제도는 2008년 리먼사태로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2009년도에 시작됐다. 당시에는 조기집행이었는데, 이후 균형집행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신속집행이다. 상반기에 예산을 조기에 집중적으로 집행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상반기 어려운 고용상황 및 거시경제 불안요인들에 대응한다'는 것을 시행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일부 일상적인 경비만을 제외하고 상반기 중에 시·군에서는 약 55% 이상을 목표로 집행해야 한다. 파급효과가 현저히 나타나거나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시작과 함께 10여년 동안 각종 폐해와 문제점들이 지적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폐지하지 않고 있다.
첫째, 단기간 집중되는 과다한 공사발주로 부실 설계와 시공이 우려되고, 인건비나 자재비가 급등한다. 둘째, 지역경제 활성화 파급효과는 미미하다. 셋째, 지자체의 이자 수입이 대폭 감소하고 재정 압박을 초래한다. 넷째, 획일적인 조기집행으로 지방재정의 안전성을 저해한다. 단적인 예로 최근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인한 많은 피해가 발생했지만 읍·면·동에서는 사업예산이 바닥이 나 긴급한 보수도 못 할 지경에 이르렀다.
다섯째, 무리한 실적경쟁으로 막대한 행정력을 낭비한다. 실제 시·군의 사업담당자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극도로 심각한 정도라고 하니 참으로 답답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이미 전문가나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차원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됏던 상황이고, 행정안전부에서도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국회에서도 2016년과 2017년 국정감사, 2017년 예결위에서도 제도 개선 의 필요성 등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제도의 성과 분석과 평가 없이 매년 반복해서 시행하고 있다는 것은 '불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불합리한 제도를 고수하는 이유가 뭘까.
행정안전부에서는 수천만원을 들여 2017년에 '지방재정 신속집행 효과성 분석용역'을 시행하고도 결과를 일선 지자체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용역 결과에 따르면 상반기의 높은 집행률 자체만으로는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고, 하반기의 (누적)집행률을 관리하면 실질적으로 재정이 확대돼 실질GDP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 번 만들어진 정책을 없애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취지가 무색하거나 부작용이 많다면 과감하게 없애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소중한 시간과 행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예산을 건전하고 효율적으로 집행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 누군가 과감하게 결정하면 된다. 누군가 끝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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