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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강원의맛·지역의멋]시장 한복판서 웃고 떠드는 장돌뱅이 허생원을 만나다

시슐랭가이드 - (5) 평창 봉평장

◇봉평장 곳곳을 돌아다녀보면 상인들이 간식거리 한번 먹어보라며 손을 내밀어 시장의 정을 더한다. 호박엿, 유과 등 주전부리는 달달하게 시장을 돌아보게 하는 별미다. 신세희기자

400년 역사 이어온 전통 5일장

이효석 단편 ‘메밀꽃 필 무렵' 배경

허생원 단골 주막 ‘충주집' 반기고

담담하고 슴슴한 메밀 맛 향연

장터 한바퀴, 소설을 거닌 듯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

꽃 대신 햇메밀 빻는 냄새가 가득한 계절, 마치 하늘과 이어질 듯한 메밀밭의 산허리를 오른다. 허생원이 나타날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소설 같은 봉평장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 걸음마다 소설 속 문장에 스며 있는 고아한 메밀꽃 향기를 곱씹어 본다. 이곳은 어느새 허생원과 조선달이 웃고 떠드는 시장 한복판이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 유명한 봉평장은 조선시대부터 400년 역사를 이어온 5일장이다. 소설의 주요 배경답게 봉평장에선 그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장 중심에는 나귀를 이끌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허생원과 조선달, 동이 조형물이 자리하고, 구석에는 허생원의 단골 주막 ‘충주집 터'가 있다. 허생원이 충주댁과 농탕치는 동이에게 야단을 치던 장면을 상상하며 ‘충주집 터'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봉평시장을 ‘메밀꽃 필 무렵'의 공간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긴 시간 자리를 지켜온 ‘장돌뱅이' 상인들이다. 장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 가고, 좌절하고, 사랑한 허생원처럼 봉평장에는 장을 터전 삼아 살아온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40년 동안 한자리에서 나물을 팔아온 현산옥(여·80)씨도 그중 한 명이다. 보따리, 배낭을 주렁주렁 메고 홀로 횡성과 봉평을 오간 지가 벌써 40년이다. 그 옆으론 직접 20m 나무를 타서 잣을 따고, 산을 헤매 삼을 캔다는 장국현(52)씨가 임산물을 판다. 또 한쪽으론 42세부터 남편과 과일이며, 즉석과자며, 채소를 팔아 1남3녀를 키웠다는 김순영(여·84)씨가 떠나보낸 ‘바깥양반'을 회상하고, 엿장수 이강일(71)씨가 전국 축제 야시장을 돌다 봉평장에 자리 잡은 이야기를 전한다.

무거운 짐을 매일 싸고 푸는 일을 반복하며 굳건하게 삶을 지탱해 온 장돌뱅이들의 면면은 척박한 땅에서도 꽃을 틔우는 메밀을 닮았다. 물, 흙이 없어도 굳건히 자라 지역민들을 먹여 살리던 메밀은 이제 봉평장의 상징이 됐다. 슴슴한 메밀 막국수며 전, 전병, 묵, 찐빵, 뻥튀기, 심지어 닭강정에까지 들어간 메밀은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고소한 맛으로 입맛까지 휘어잡는다.

1957년 현대화돼 지역상권의 한 축을 담당했던 봉평장은 산업화 이후 여느 시장들처럼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13년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통해 재정비 과정을 거친 뒤 현재는 관광명소가 됐다.

봉평장을 빠져나오는 길, ‘여울목'과 ‘노루목 고개'를 지났다. 지금은 다리가 놓이고 도로가 닦여 시시한 개울, 언덕일 뿐이지만, 소설 속 허생원은 힘겹게 걸으며 세월의 무게를 느낀 길일 터다. 이 겨울, 산허리 온통 흐드러진 메밀꽃 대신 새하얀 눈이 반기는 봉평장을 찾아 장돌뱅이들의 삶을 엿보는 건 어떨까.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라는 허생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둘러보는 봉평장에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는' 풍경을 보기도 하고,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를 손에 잡힐 듯 들어'보는 행운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미토팀=김현아·이현정·박서화기자/편집=이왕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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