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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월요칼럼]전쟁·레퀴엠·비목

이영진 음악평론가

오랜 세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교육해 오면서 해마다 유월이면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가곡 ‘비목'을 가르쳤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으로 시작되는 한명희 작시, 장일남 작곡의 ‘비목'은 첫 소절의 노랫말로 인해 씁쓸한 기억을 내게 남긴 가곡이기에 잊을 수가 없다. 어느 여학교에서 수업할 때의 일이다. 화약 연기의 뜻을 담고 있는 초연(硝煙)은 한자를 병기했을 때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어휘다. 예컨대, 연주회나 연극의 첫 번째 공연을 의미하는 초연(初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태연하거나 느긋한 상태의 초연(超然)의 뜻도 있다. 처음으로 하는 결혼도 초연(初緣)이라 한다. 손님을 초대하여 영화나 연극을 보여주는 일도 초연(招演)이다. 당초에 내가 학생들에게 ‘비목'을 가르칠 때 가사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고 지도했어야 했는데, 생각 없이 따라 부르게 하고 수업한 게 화근이 되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 이렇게 내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 한 여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초연이 뭐예요?” “초연····?” 나는 답이 궁색했다. 솔직했어야 했는데 당황하여 위기를 모면할 생각으로, “어, 그거? 초가 타면서 나는 연기를 말하는 거야”라고 둘러댔다. 문맥상 앞뒤가 안 맞는 황당한 답변이었다. 촛불 연기가 스쳐 지나간 계곡이라니? 그러나 다행히 질문한 여학생은 물론, 다른 학생들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

문헌에 의하면, 전쟁을 묘사하거나 주제로 한 클래식 음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이 있다.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 관련 클래식 곡만 해도 수십 곡이다. 대표적으로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 ‘황제'가 있고, 전쟁 교향곡으로 일컫는 관현악곡 ‘웰링턴의 승전'이 있다.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도 나폴레옹의 전쟁과 밀접하다. 슈만의 가곡 ‘두 사람의 척탄병'도 마찬가지다.

1,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클래식 곡은 이보다 더 많은 작품이 만들어 졌다. 또한 전후(戰後)의 상흔을 위로하기 위해 작곡된 곡도 많이 있다.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곡인 이른바 ‘전쟁 소나타',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 그리고 현대 작곡가 고레츠키의 ‘교향곡 3번', 일명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은 모두 2차 대전의 상흔을 처절한 감정으로 담아낸 클래식 곡들이다.

한국은 클래식 음악 역사가 유럽에 비해 매우 일천해 비교 자체가 무모하지만, 전쟁을 직접 겪은 작곡가들이 다수 있었음에도 전쟁 관련 작품이 조명받지 못한 현실은 유감스럽다. 당시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작곡가들, 예컨대 박태준·김성태·이흥렬·김순애·윤용하·조두남·현제명·변훈 등이 남긴 곡들은 대개 군가, 혹은 가곡 한두 작품이 전부다. 그나마 나운영의 1번 교향곡 ‘한국전쟁(Korean War)', 김동진의 ‘나의 조국'과 같은 칸타타가 전쟁을 증언하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상황처럼 이 땅에 다시금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거나 전쟁으로 인해 죽은 자를 위로하는 음악이 작곡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바라건대 이제는 ‘전쟁 레퀴엠'이나 ‘비목' 같은 음악 대신 ‘세계 평화를 위한 팡파르'가 만들어져 오랫동안 울려 퍼지기를 모두가 염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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