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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발언대]'묵비사염(墨悲絲染)'의 교훈

이용춘 수필가

묵비사염(墨悲絲染)!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묵자가 슬퍼했다는 뜻이다. 묵자가 살았던 때(기원전 479년~기원전 381년)는 철기의 사용으로 생산력이 증대되자 농민 등이 신흥계급으로 부상하는 격동기였다. 여러 학자들이 수많은 학파를 만들어 사회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묵자는 노자, 공자와 함께 춘추전국시대 초기 3대 철학자로 꼽힌다. 공자의 유가에 특히 비판적이었던 묵자의 사상을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모든 인간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겸애설(兼愛說)이다. 유가의 사랑이 엄격한 신분 질서를 바탕에 둔 데 비해 묵가는 모든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사랑하라고 설파했다. 둘째, 만민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내 몸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묵자의 겸애는, 모든 인간은 동등해야 한다는 평등의 논리를 담고 있다. 셋째는 침략과 정복 전쟁을 반대하고, 방어 전쟁만이 ‘의로운 전쟁’이라는 반전론을 주장했다. 이외에도 절용 등 민생과 직결되는 어젠다를 던짐으로써 일반 서민들의 호응을 받아 한때는 유가 학파를 능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어느 날 묵자가 물감 들이는 현장을 목격했다. 아낙네가 흰 실 한 다발을 솥에 넣었다가 끄집어내니 바로 푸른 실이 되어 나왔다. 흰 실이 걸렸던 빨랫줄은 순식간에 노란색, 붉은색, 자주색, 검정색 등 오색실로 바뀌었다. 묵자가 아낙네에게 물었다. “푸른색으로 변한 이 실은 원래의 흰색으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까?” 아낙네가 대답했다. “한 번 물 들이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아무리 빨고 햇빛에 바랜들 흰색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묵자는 물감 들이는 현장을 빠져나오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런 이치가 어찌 실을 물 들이는 데만 해당 되겠는가. 인간도 물들고, 나라도 물든다. 악에 물들어 포악한 정치를 한 임금도 있었고, 선에 물들어 선정을 베푼 임금도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을 물들이는 그 바탕색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글은 『묵자』 소염편에 나온다.

특정 정치 이념에 치우친 교육을 하여 문제가 되는 사례를 종종 본다. 이 같은 뉴스는 어떤 사건보다 안타깝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의 영혼은 물들이기 전의 흰 실과 같다. 그런 바탕에 어떤 색깔로 물들이느냐에 따라 학생의 일생이 좌우된다. 물감 들이는 아낙네의 말처럼 한 번 물 들이면 원래로 돌아오기 어렵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들께서 가슴 깊이 새기고, 새겨야 할 일이다.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어설픈 이념이나 편향된 사상을 의도적으로 주입 시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나 죄악이 될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색깔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의 할 일이다. 『묵자』를 읽다가 손주 생각을 하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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