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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발언대]"증오와 혐오의 시대 이대로는 안 돼"

한상량 춘천지구교육삼락회장

요즈음 지인들에게서 오는 SNS 내용이 적개심에 불타는 증오로 가득찬 저주의 굿판이 난무하고 있다. 뉴스를 보다 보면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살기등등한 법적 진실 공방의 게임이 지루한 장마처럼 끊이질 않는다. 이를 보는 국민은 피곤함을 넘어 국가의 위기감을 느낀다. 조선시대 멸망을 가져온 사색당파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굳건하던 고구려도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의 내부 분열로 멸망하였고, 융성하던 통일신라도 심화된 내부 권력다툼으로 찬란한 국가의 막을 내렸다. 세계를 휘두르는 막강한 미국도 남베트남의 싸울 의지가 없고 분열된 상황에서는 한계를 느끼고 손을 떼어 첫 패배의 굴욕을 맛보고. 국제경찰에서 물러서려고 하고 있다. 세계역사에서 어느 막강한 나라도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멸망의 문을 거쳤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촉발되고 우크라이나 장기전쟁을 거치며 세계가 경제위기, 안보의 위기, 정치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이때 우리나라도 모든 경제의 지표가 중증 복합위기 상황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건만 정치인들의 끝 모를 이전투구는 진행형이다. 이제는 몇십 년 전 민족의 아픈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던 것도 끄집어내어 다시 싸움의 불씨를 살려가고 있다. 이 나라가 원한에 사무친 거대한 정쟁의 집단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러고도 어찌 이 나라가 온전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고 그러다 보면 각자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것이 서로 큰 집단을 형성하여 서로 방향이 다를 때 충돌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서로가 계약을 맺은 법으로 해결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법이 맥을 못 추고 뗏법이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법만이 최상은 아닐 것이다. 인간들의 살아가는 최하의 규범일 뿐이다. 성경에서도 “사랑은 어디 가고 율법만 남았는가”라고 하였다.

증오의 처방전은 무엇일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사랑의 계명일 것이다. 이 사랑의 실천자는 누구일까? 대부분 종교인이 그 속에서 살아가라고 계명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그 사랑을 짓밟고 사건의 중심에 서 있으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지성의 국민이 주인이 되어 바른 방향을 제시하여야 되지만 우르르 앵무새 군중이 되어 이마저 이념의 패를 이루어 죽기 살기로 이념의 강을 넘지 못하니 이를 어찌하오리까. 국민의 여론은 언론에 의하여 형성되거늘 이제 언론인들이 국익의 힘을 모으고 정상적인 국가가 되도록 모두 힘을 합해야 될 것이다. 이런 혼란한 때에 독재가 스며들어 정당화를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잘사는 나라를 이루고자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국민들, 국가가 왜 안 했느냐고 질타만 할 것이 아니라 민주와 자유를 내세우며, 그들에게 휘두를 무슨 권한을 제대로 주었는가? 이제 우리가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냉철히 답해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