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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확대경]선(線) 위의 인생

최상훈 철원 김화고 교감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신차를 구입하면 처음엔 왠지 불편하고 어색하다.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으니 빨리 감을 익히는 수밖에. 크기에 대한 감각을 익히려고 도로 주행을 하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비상 신호가 울린다. 이거 뭐지? 차량 전자장치에 이상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겠지만. 둔한 감각에 살짝 눈치를 보니 차의 크기가 내 몸에 익지 못해서 운행 차선을 넘나들 때마다 차량이 예민하게 감지해서 보내주는 이상음이었다. 남의 차선을 침범했으니 운전 중인 나에게 똑바로 정신 차리라고 보내는 강력한 경고음이었다. 도로 위에 그려진 경계선은 차량 안전을 위해 꼭 지켜야되는 엄청 중요한 선(線)이다.

비단 도로 위에 그려진 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일상 스포츠에서 수 많은 선들과 만난다. 야구 경기장 그라운드에 그려진 선의 안쪽(선상도 가능하다)을 굴러가는 공만을 인플레이로 인정한다. 단 1cm만 벗어나도 예외없이 파울볼이다. 축구장에서도 마지막 수비수보다 뒤처진 위치에서 넣는 골은 오프사이드 반칙으로 무효가 된다. 배구 경기의 가운데 설치한 네트에 손이 미세하게 닿아도 반칙이다. 테니스 경기에서도 조금 더 강력한 서브를 보내려고 라인을 살짝 밟으면 풋폴트로 서비스의 기회를 한 번 잃게 된다. 스케이트 경기장 트랙의 마지막 골인 지점의 도착선도 만분의 일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적당한 꼼수는 여기에서 절대 통용될 수 없다. 첨단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될 양심선이다.

물리적인 선은 그렇다 치고 우리가 마주하는 또 다른 정말 중요한 선이 있다. 그것은 마음의 감정선이다. 이 선(線)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조절하기 쉽지 않은 선이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해야 할 선 또한 아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늘 팽팽한 자존심의 경계선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시어머니는 더 이상 며느리와의 관계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일방적 슈퍼 갑이 아니다. 핵가족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쿨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한순간에 무너진 감정선을 수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기 위해서는. 학생과 교사도 감정선의 경계선에서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꼭 뒷말썽이 생긴다. 내가 이 직업을 가지고 33년 동안 너무 많은 사례를 경험한 터라 이런 면에서는 나름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남녀관계에서도 이 선을 쉽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넘나들다가는 큰 일을 마주할 수 있다. 성인이라면 한번쯤 그 시절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반칙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되는데, 자기 몫이 아닌 선을 넘지만 않으면 될 것을. 각자에게 주어진 규범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되면 어떤 경고음도 발생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물건이든 운동 경기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선은 분명히 지켜야 되는 금기의 공간이다. 내 영역의 위치 좌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슬기로움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그 옛날 초등학교 1학년 때가 생각난다. 짝궁과 나란하게 앉았던 낡은 나무 책상 위에 내 영역 표시로 그어놓은 추억의 아름다운 경계선이 아직도 내 기억의 심연 속에 올곧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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