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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호등]보릿고개 생존 전략

김오미 문화교육부 기자

크리스마스 캐롤이 멈추자 문화예술계에는 긴 보릿고개가 시작됐다. 공적 지원금이 배분되지 않는 1~3월은 다수의 공연장이 문을 닫는 비수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문화부로 자리를 옮긴 초짜 배기 기자인 나에게 텅 빈 공연 일정표는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문화예술계는 매년 찾아오는 보릿고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다.

불 꺼진 무대 뒤 문화예술인들은 어떻게 보릿고개를 넘고 있을까? 새해맞이 인터뷰를 통해 만난 각 계 각 층의 예술인들은 공통적으로 답했다. ‘쉬고 있다’고. 어떤 이는 차기작을 구상하며, 또 다른 이는 밀린 잠을 몰아 자며, 또 어떤 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저마다의 쉼을 이어가고 있었다. 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나 타의로 이어가는 긴 쉼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문화예술계의 소식을 전하는 나 역시도 기삿거리를 찾는 데 진땀을 빼야 했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보릿고개는 더욱 야속했다.

그럼에도 보릿고개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가뭄 속 단비 같은 무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겨울, 강원 문화예술계에는 공연장의 정적을 깨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진규 마이미스트는 지난달 3일부터 지난 24일까지 판소리 명창 배일동, 한국화가 신은미와 ‘2024 신 유배기행(奇行)’을 열고 전국의 공연 예술인들과 무대를 꾸렸다. 경남 통영에서 시작해 춘천‧강릉을 거쳐 서울에서 막을 내린 공연은 지역 예술가들의 무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며 보릿고개를 넘는 지역 예술계에 희망을 전했다.

춘천지역 예술단체들의 협업도 얼어붙은 공연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춘천문화재단‧춘천마임축제‧춘천인형극제‧문화프로덕션 도모‧협동조합 판은 보릿고개의 정점이던 지난달 23일 합동 축제 ‘봄식당: 리뉴얼’을 선보였다. 마임, 인형극, 아카펠라, 댄스 등으로 구성된 축제는 겨우내 잠든 관객들의 흥을 깨웠다. 이 밖에도 지난 1월 20일 강원지역의 젊은 금관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된 ‘더 루톤(The RooTone)’의 무대 등 움츠러든 공연계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예술인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하지만 공적 지원의 공백을 일부 예술인과 예술단체가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정 기간 동안 집중된 공연을 사계절로 분산시킬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2008년부터 ‘공연예술창작산실’ 사업을 통해 대본 공모에서부터 사전 연구 및 제작 단계를 지원, 매년 연말과 연초 사이 대학로예술극장에 선정작을 올리고 있다. 해당 사업은 전국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제도의 효용성이 강원 전역에 미치기에는 거리감이 있다. 강원만의 공연 비수기 대책이 절실하다.

보릿고개는 견뎌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까? 우리 조상들은 보릿고개 때 나라의 곳간을 열었다가 추수 뒤 돌려받는 ‘진대법’으로 겨울의 추위를 넘었다. 해마다 찾아오는 공연계 혹한기를 견딜 우리만의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보릿고개의 무게를 언제까지 문화예술인들에게 지울 수는 없지 않나. 계절은 완연한 봄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공연계에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부디 사계절을 지나 다시 만나게 될 다음 보릿고개는 덜 가파르기를 봄의 문턱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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