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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 ‘단비’

황순원의 ‘소나기’는 아름답고 순수하며 슬픈 첫사랑의 이야기다. 정극인의 ‘상춘곡’에서 비는 만물의 생성을 촉구하는 자비였다. 박인로의 ‘독락당’에서는 군왕의 은혜로 비유됐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내리는 ‘칠석우(七夕雨)’는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고 다음 날 아침에 오는 비는 이별의 눈물이라고 한다. ▼‘단비’는 꼭 필요한 때 알맞게 내리는 비다. 기다리던 반가운 비가 내렸다. 메마른 대지를 충분히 적셔주지는 못했지만 가뭄과 산불 걱정도, 황사도 덜어주는 그야말로 감우시강(甘雨時降·달콤한 비가 때맞게 내린다)이다.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19일) 즈음에 오는 비는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 예부터 모든 곡식이 잠을 깨는 곡우에 비가 내려야 논에 못자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못자리가 잘돼야 가을에 수확이 많을 것은 당연하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세종 8년(1426년)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온 나라가 타들어가자 세종이 친히 18일간이나 앉아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비가 하늘의 뜻으로 내려지는 것이라 여겼다. 삼국시대부터 가뭄이 심하면 시조묘나 명산대천에 비 내려줄 것을 비는 기우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도 오랜 기간 비가 오지 않으면 임금이 직접 기우제를 지냈다. 세종은 재위 내내 비를 청하는 일에 매달렸을 정도로 한재(旱災·가뭄)에 시달렸다. 디지털 ‘조선왕조실록’ 세종조편에서 ‘기우제’를 검색하면 199건이 나올 정도다. 재위 기간 32년간 한 해 평균 6차례의 기우제를 지낸 셈이다. ▼두보는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에서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라 했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의미다. 지난 15, 16일 이틀간 내린 비가 그렇다. 이런 비라면 열흘에 한 번씩 내려 만물이 살기에 적합하게 해준다는 ‘오풍십우(五風十雨)’에 비할 만하다. 산불이 이어지고 있는 때여서 더욱 반기게 된다. 때아닌 이른 더위도 비가 내리면서 한풀 꺾였다. 잠시 산불은 멈추고 산과 들에는 꽃이 활짝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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