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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단상]‘자화상 (自畵像)’

최상훈 홍천 내면고 교감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노천명의 ‘사슴’에 나오는 구절이다. 조물주가 만물을 그렇게 창조했으니 그 또한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자화상은 아니었을까?

‘보다’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관찰하다’는 대상에 대한 주의와 관심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반면, ‘노려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전제로 하며, ‘훔쳐보다’는 의도와 실체를 숨기고 몰래 지켜본다는 의미다. 말뜻이 매양 비슷해 보여도 숨겨진 내면에 오묘한 차이가 있음은 무엇일까? 모든 대상을 볼 때마다 다양한 감정과 태도를 포함하고 있기에 동시에 어디에서 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며칠 전, 두툼한 명화집을 넘기다 우연히 눈에 띄는 자화상을 만났다. 옛 그림의 주인공은 조선시대 문인화가 ‘윤두서’. 몇십 년 전, 학창 시절 미술교과서에서 보았던 강렬한 느낌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대뇌피질에 지금까지 또렷이 박혀 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품격이 넘쳐나는 엄청난 수준의 정밀묘사다. 도대체 몇 시간을 그렸을까? 선명한 눈썹 자국, 훅 하고 불면 금세라도 날아갈 것 같은 잔털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정성을 들인 실타래 같은 턱수염. 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자화상은 바로 이렇게 그리는 거라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림 속 눈의 시선 방향이 나와 동시에 마주쳐 보고 있는 내내 눈에서 강렬하게 레이저 불빛이 뿜어져 나온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팽팽한 기싸움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쏟아내는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다는 표현같이. 관람자에게 던지는 시선은 모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림 한 점에 인간적 고뇌와 슬픔이 흠뻑 녹아 짧은 눈빛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관계와 공감은 시작되지 않았을까? 힘껏 생각하지 않아도 옛사람의 자화상은 긴장감을 잠시라도 놓을 수 없을 만큼 근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애잔한 마음이 밀려온다.

차가운 서리를 맞으며 약속했던 강건한 다짐들. 새해 첫날 초라한 필적으로 남겨놓았던 두꺼운 종이 부적은 벌써 생명을 다한 듯,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찬 이슬에 단련된 콩알만 한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봄날, 과연 나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성찰하듯 그려본다.

힘들어도 묵묵히 견딜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리고 흩날리는 봄바람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자연의 향기까지 자화상에 덧대어 상상해 본다. 당신만의 따뜻한 감정으로 그려낸 소중한 시간이 되길 응원한다. 오늘은 잊고 지냈던 내면의 자화상에 도전해 보자. 두려워말고, 우스꽝스러운 휴대폰 이모티콘 마냥 쓱쓱 문질러 보자. 힘겨웠던 삶의 여백을 천천히 되돌아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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