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일상에서 답을 찾는 '골목 실험실']어르신 위한 폐지 전용 리어카 만들 수는 없을까

폐지 수거 동행하며 보다 안전한 리어카 제작·연구
무거운 리어카, 폐지 담기 어렵고 앞도 잘 안보여
3시간 동안 7㎞로 리어카 끌며 수입은 고작 5천원

강원일보와 춘천사회혁신센터가 폐지 수거 노인들을 위한 '안전한 리어카' 제작 실험에 나섰다. 본보 김준겸 기자와 사회혁신센터 직원들이 지난 20년간 춘천시 효자동 주변의 폐지를 수거해온 강순복(64)씨와 동행하며 폐지수거용 리어카의 실태와 개선점을 찾아보고 있다. 박승선기자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폐지수집 노인 현황과 실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강원지역의 ‘생계형 폐지수입’ 노인은 456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실제 거리에서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 이들은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 한여름의 폭염, 위험천만한 골목과 도로변에서 교통사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있다. 그럼에도 ‘리어카’는 이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생계수단이자 재산이다.

문제는 이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리어카가 폐지 수거에 적합하냐 하는 것이다. 원래 리어카는 인력으로 나르기 힘든 여러 물품을 손쉽게 이동하기 위한 운반용 수레이다. 그렇다보니 폐지만을 담아 나르기에는 여러 불편함이 있다.

강원일보와 춘천사회혁신센터의 실험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폐지 수거 노인들은 물론 운전자 등 시민들을 위해서도 보다 안전한 ‘리어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리어카 프로젝트는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있는 폐지줍는 어르신들의 일상에 춘천사회혁신센터, 지역주민, 강원일보 기자들이 동행하면서 여러 문제점을 직접 체감, 한국폴리텍Ⅲ대학 춘천캠퍼스와 협업해 이들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는 새로운 리어카를 실제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강원일보와 춘천사회혁신센터가 폐지 수거 노인들을 위한 '안전한 리어카' 제작 실험에 나섰다. 본보 김준겸 기자와 사회혁신센터 직원들이 지난 20년간 춘천시 효자동 주변의 폐지를 수거해온 강순복(64)씨와 동행하며 폐지수거용 리어카의 실태와 개선점을 찾아보고 있다. 박승선기자

■폐지 실은 200㎏ 리어카=지난 12일 오전 9시, 춘천의 아침 기온은 영하 5도로 올 겨울들어 그나마 가장 따뜻한 날이었다.

20여년간 폐지를 주워온 강순복(여·64)씨도 아침 일찍 리어카를 끌고 골목으로 나섰다. 이날 강씨의 폐지 수집에는 강원일보, 춘천사회혁신센터가 동행하기로 했다.

강씨는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보여줬다. 양 손가락이 모두 안쪽으로 휘어져 펴지지 않았다. 매일 리어카를 밀고 끌면서 손가락 끝마디가 변형된 것이다.

강씨는 20년 넘게 끌어온 자신의 리어카를 ‘자가용’이라고 자신있게 소개했다. 폐지 수거용 리어카의 무게는 50㎏ 정도였다. 폐지와 재활용품 등을 가득 싣고나면 무게는 200㎏ 정도 된다. 그는 “하루종일 리어카를 끌고 나면 손 마디 마디에 불이 난 것처럼 아파 죽겠어”라고 말했다.

실제 20대인 기자가 직접 2시간 가량 리어카를 끌어보니 팔 안쪽, 양 어깨 등에 근육통이 몰려왔다. 리어카를 끄는 요령도 없지만 무게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폐지가 차곡차곡 가슴팍 높이 이상까지 쌓이자 한 걸음 내딯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폐지 수집을 마치고 고물상으로 가는 길에는 폐지가 머리 위로 높아져 앞으로 나가기는 커녕 리어카와 사람 모두 앞뒤로 ‘뒤뚱뒤뚱’ 흔들리며 서있기 조차 힘들었다. 사람 키 높이 보다 높이 쌓인 폐지를 고정하는 유일한 수단은 고무줄 뿐이다.

리어카로 골목이나 도로를 막고 오랫동안 있을 수 없으니 마음이 급해져서 박스 형태의 폐지는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실어야 했다. 리어카 휘청일 때 마다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폐지가 길바닥으로 쏟아졌다. 특히 겉면이 코팅된 박스나 크기가 작은 폐지는 아예 고정이 불가능해 리어카에 힘을 줄 때마다 쏟아지기 일쑤였다.

강씨는 “리어카를 몰다보면 폐지가 떨어져도 잘 안보여서 누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모를 수밖에 없고 떨어진 폐지를 길에 두고 가면 다른 사람들도 불편하니 항상 신경쓰인다”고 했다.

강원일보와 춘천사회혁신센터가 폐지 수거 노인들을 위한 '안전한 리어카' 제작 실험에 나섰다. 본보 김준겸 기자와 사회혁신센터 직원들이 지난 20년간 춘천시 효자동 주변의 폐지를 수거해온 강순복(64)씨와 동행하며 폐지수거용 리어카의 실태와 개선점을 찾아보고 있다. 박승선기자

■교통사고 위험…주차차량 긁을까 전전긍긍=요즘처럼 겨울철 눈 쌓인 골목이나 빙판길, 여름철 빗물이 고인 도로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이날도 빙판길을 지날 때 리어카가 미끄러져 애써 쌓은 폐지가 앞으로 쏠려 몇번이 쏟기도 했다. 강씨도 2년 전 겨울 눈이 내리는 날 폐지를 수거하다 눈길에 미끄러지며 크게 다친 후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어쩔 수 없이 길에 나오지 못한다.

리어카를 직접 끌어보니 붉게 녹슬고 차갑게 얼어 손잡이를 쥐는 것 자체가 살이 베이는 듯한 고통이었다.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얼어붙어도 차가운 리어카 손잡이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했다. 차갑게 얼거나 뜨겁게 달아오른 손잡이를 쥐고 일하는 강씨의 손바닥은 온통 굳은살 투성이었다.

그는 “겨울에는 손잡이가 얼음장처럼 차가워 살을 에는 것 같고, 여름에는 손잡이가 불에 달군 것처럼 뜨거워져 찬물에 적신 수건을 덧대고 일한다”고 말했다.

교통사고의 위험 역시 크다. 이날 기자는 리어카를 끌던 중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움직임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서 주차된 승용차에 부딪힐 뻔 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이날 3시간 동안 폐지를 수거하며 골목에서 29번이나 운행 중인 차량과 마주쳤고 피할 공간이 없어 당황하기도 했다.

강씨의 동료는 2018년 고철을 수거하던 중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의 옆면을 긁어 40만원의 수리비가 나왔고 이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강씨를 비롯한 춘천지역 폐지 수거 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돕기도 했다.

강씨는 “많은 시민 분들이 리어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지만 난폭하게 경적을 울리거나 폭언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다보니 리어카를 끌 때마다 마음이 급하고 서두르게 된다”고 말했다.

강원일보와 춘천사회혁신센터가 폐지 수거 노인들을 위한 '안전한 리어카' 제작 실험에 나섰다. 본보 김준겸 기자와 사회혁신센터 직원들이 지난 20년간 춘천시 효자동 주변의 폐지를 수거해온 강순복(64)씨와 동행하며 폐지수거용 리어카의 실태와 개선점을 찾아보고 있다. 박승선기자

■7㎞ 리어카 끌며 수입은 5천원=이날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춘천시 효자동 일원에서 7㎞ 가량 리어카를 끌며 수거한 폐지는 총 150㎏이었다. 그리고 강씨가 고물상에서 받은 돈은 단돈 5,000원이다. 노동강도에 비하면 분명 적은 돈이었다.

강씨는 “ 폐지 수거 작업이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이다보니 수익이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면서 “하루에 두차례 정도 일을 하고나면 밤에 잠을 자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고 통증이 쏟아지지만 밥 한끼라도 챙겨 먹으려면 매일 폐지를 수거하는 일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활동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다. 이에따라 춘천사회혁신센터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시민, 강원일보 등은 이들과 동행하며 얻은 경험과 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리어카를 제작해보기로 했다.

리어카 프로젝트에 동참한 시민 장윤미(42)씨는 “폐지 수거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곧 이들의 처우와 연결되기에 폐지 수거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며 “리어카 프로젝트를 통해 폐지 줍는 노인들이 지역의 자원순환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말했다.

윤효주 춘천사회혁신센터 팀장은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대한 시민참여형 관찰을 통해 도시의 이슈를 발굴해내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폐지 줍는 노인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 시민들이 직접 도시의 이슈를 발굴할 것”이라며 “리어카 프로젝트의 마지막 목표는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이 지역 사회의 깨끗한 환경을 책임지는 ‘자원재생활동가’로 인정받게 만들어야 한다”이라고 밝혔다.

춘천사회혁신센터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들은 이 날 외에도 수차례에 걸쳐 폐지줍는 노인과의 동행했으며 이를 통해 파악한 문제점과 위험요인 등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미해 가볍고 보다 견고하며 안전한 새로운 리어카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폴리텍Ⅲ대학 춘천캠퍼스의 도움을 받아 최종 버전의 신형 리어카 8대를 새로 제작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강원일보는 앞으로 토론과정과 새로운 리어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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