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후면 강원도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원주 한일전기가 우리 곁을 떠나 세종시로 이전한다. 그렇다. 40여 년 전 서수남과 하청일이 “한일~한일자동펌프 물 걱정을 마세요”라며 광고CM송을 불렀던 바로 그 기업이다.
한일전기가 밝힌 이전 이유는 비싼 물류비 부담에 원주 본사 및 다른 지역 공장들을 한 장소로 집약한다는 것. 그러나 들리는 바에 의하면 한일전기측이 여러 차례 지자체에 향토기업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 이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다른 지역 기업 유치만큼이나 중요한 건 향토기업 지원이다. 강원도가 타지역 기업 유치를 위해 제시하는 지원내용을 보면 최대 300억 원 규모의 특별지원을 포함해 본사 이전보조금 및 부지매입보조금, 임대료 보조금 등 상당수다.
신생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정책도 창업 3년 이내 기업에 대한 자금융자, 청년창업펀드 등 여럿이다.
반면 강원도의 토종 향토기업에 대한 지원은 업력 20년 이상 업체들을 대상으로 일부 지원사업 신청 시 우대가점을 부여하는 '백년기업 선정 사업'이 사실상 유일하다. 지난해엔 6개 기업이 백년기업에 선정됐다.
여기서 도내 기업들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자. 기업들의 대출 잔액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1년 새 40%나 늘었고, 연체율도 급증하고 있다. 법인 폐업 수는 매년 증가세다. 이는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강원지역 지난해 4분기 실업률은 3.4%로 전국평균 2.6%를 크게 웃돌면서 17개 시·도 중 가장 높다. 같은 시기 도내 고용률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1년 전보다 낮아졌다.
다시 말해 지금 강원지역 향토기업들이 쓰러지고, 그에 따른 일자리 악화도 현실화되는 상황이다.
미리 예견하지 못했을 만한 상황은 아니다. 도내 경제단체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기간 악화된 자금 사정에 더해 고금리·고물가·고환율·고임금 등 대내외적 어려움에 지역기업 생존 자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묻고 싶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과 테슬라 공장 유치가 정말 우리 기업 살리기보다 시급한 사안인지. 눈에 보이는 성과에 매몰돼 정작 지역경제 활성화에 소홀하진 않은지. 물론 대기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공무원들의 노력을 폄훼할 요량은 아니다.
다만 도내 기업에 관한 관심과 지원도 병행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존 기업이 다 죽은 후에 삼성전자가 오는 게 무슨 소용인가. 도내 한 기관장은 삼성전자와 테슬라 등 슈퍼 대기업이 실제 강원도에 오면 건설 초기부터 지역 근로자를 모조리 흡수해 오히려 인근 소규모 기업들은 살아나기 힘들 것을 걱정했다. 지자체들이 그에 대한 방비책을 세워두고 기업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2020년 기준 강원도 전체 기업 종사자 47만1,367명 중 소상공인을 포함한 중소기업 종사자 수는 총 44만6,326명으로 전체의 94.6%에 달한다. 강원도 경제정책이 향토기업이자 중소기업에 집중돼야 하는 이유다. 이들이 곧 강원경제이며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