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경찰의 밤

김준겸 사회부

“가래침 한 번 맞는 게 백배 낫다고 생각합니다.” 올 3월17일 금요일 밤. 춘천경찰서 중부지구대 소속 경찰관이 내게 건넨 말이다. 만취 상태의 20대 주취자가 그의 기동화에 가래침을 ‘퉤’ 뱉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그는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보호대상 주취자의 주먹질에 몸과 마음 모두 상처를 입는 것보다는 낫다”고 묵묵히 답했다. 오히려 비틀대는 주취자가 행여 건물에 충돌하거나 바닥에 넘어질까 봐 머리와 몸을 보호하기 바빴다.

기동화에 묻은 가래침이 영하의 날씨 속에 얼어붙고 나서야 주취자는 본인의 휴대전화 잠금 비밀번호와 집 주소를 기억해 냈다. 중부지구대 순찰팀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0분 후. 순찰차 안에서 또 다른 주취자 신고 무전이 울려댔다. ‘돌아온 불타는 금요일’을 맞아 밤새도록 이어질 주취자와 사건 신고의 신호탄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우리의 일상에 불타는 밤이 돌아왔다. ‘부어라, 마셔라’를 외쳐 대는 대한민국의 밤 문화가 돌아오면서 현장의 경찰관들은 야간 근무 동안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나는 그들과 동행해 봤다.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지는 지구대 야간근무와 평일과 주말을 구분하지 않고 매일 진행되는 교통경찰의 음주단속 현장이었다. 대한민국의 밤을 지키기 위한 경찰의 밤은 사명감과 책임감이 없다면 소화하기 어려워 보였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경찰관들은 기동화에 가래침을 맞아도, 술에 취한 대학생이 순찰차에 손가락질을 해도, 음주측정기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쾌한 티를 내비치는 시민 모두를 똑같은 ‘보호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근무 투입 후 5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주취자 신고 무전이 잠깐 멈췄다. 로봇처럼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뛰어다니던 경찰관들도 기동화 끈처럼 꽉 묶여 있던 긴장의 끈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밀크커피 한 잔을 타 주며 “오늘은 그래도 무난하고 한가한 편”이라고 넉살 좋은 웃음을 짓는 그들을 보며 ‘경찰관도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밀크커피를 다 마시기도 전에 춘천 팔호광장 일대에서 80대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다는 무전이 울렸다. 급히 시동을 건 순찰차 뒷좌석에 탑승한 뒤 현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큰 문제 없이 귀가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할아버지가 큰길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떠나지 않고 순찰차로 뒤를 조심히 따라가며 전조등으로 길을 밝혀줬다. “혹시 넘어져 다치시면 안 되니까요”라는 그들의 한 마디에 ‘짭새’라는 비속어와 ‘견찰’이라는 조롱에 얼룩지기에는 너무나 대단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온 국민을 슬픔으로 몰아 넣었던 이태원 참사 당시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내용으로 연일 경찰을 힐난하기 바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 둬야 할 것은 사고가 우려되는 현장 속에서 ‘제발 이동해 달라’고 처절하게 절규했던 이태원 파출소 소속 김백겸 경사의 사명감과 책임감이다. 그의 사명감과 책임감은 오늘도 대한민국의 밤을 지키는 현장의 경찰관들이 무장한 가장 강한 무기다. 그런 그들에게 넉살 좋은 웃음으로 ‘오늘도 고생 많으십니다’라는 격려 한 마디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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