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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조선왕조실록·의궤 톺아보기]인물열전③ 장영실(上)

“오직 실력으로…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
노비의 신분서 종3품에 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천문관측 기기인 간의와 혼천의를 비롯해 앙부일구, 측우기, 자격루 등 세상을 바꾸는 온갖 혁신적인 기기를 만들어 낸,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蔣英實)은 조선왕조실록 안에서 갑자기 사라진 미스테리한 인물로 남아있다.

그러한 역사적 팩트를 기반으로 해 2019년 한석규(세종), 최민식(장영실) 주연의 ‘천문: 하늘에 묻는다’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전 시대를 통틀어 장영실 만큼 역사 기록에 자주 오른 내리며 회자된 과학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기록이 남아 있으니 실존인물인 것은 맞지만 그의 신분이 천민이었고 탄핵 당했던 탓에 1390년 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만 할 뿐 정확한 생몰연도는 알 수 없다.

그의 신분에 대한 내용은 1433년 장영실에게 정4품 무관직인 호군(護軍)의 직책을 내리는 것을 두고 세종이 신하들과 나누는 실록 속 대화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의 소주·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아버지는 귀화인(아산 장씨 족보에는 다르게 서술)이고 어머니는 기생이었는데 조선시대 기생의 신분은 관에 속한 노비 즉 천민이었다. 그 자식들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랐기에 장영실은 그대로 관노의 신분을 따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관노출신으로 정5품 사직(司直)이라는 직책(세종실록 55권, 세종 14년 1월 4일)에 있던 장영실을 승진시키는 일에는 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유일한 시빗거리라면 그가 관노라는 점이었지만 이미 관노를 호군에 제수한 예가 선대 왕들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장영실을 발탁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김인(金忍)은 평양의 관노였사오나 날래고 용맹함이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호군을 특별히 제수하시었고, 그것만이 특례가 아니오라, 이 같은 무리들로 호군 이상의 관직을 받는 자가 매우 많사온데, 유독 영실에게만 어찌 불가할 것이 있겠습니까.(이상 세종실록 61권, 세종 15년 9월 16일)

그렇다면 임금과 신하들은 왜 이러한 논의를 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장영실이 세종의 명을 받아 물시계인 ‘자격궁루(自擊宮漏)’를 완성시켰기 때문. 세종은 장영실이 아니면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만듦새의 정교함이 원나라 순제때 물시계를 능가한다는 평가까지 내린다.

이로부터 5년 후인 1438년 물시계를 설치해서 운영한 경복궁 내부의 전각인 흠경각(欽敬閣)이 완성 됐을 때(세종실록 80권, 세종 20년 1월 7일), 장영실은 종3품의 무관직인 대호군(大護軍)의 위치에까지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장영실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도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가장 천한 노비에서 종3품 관료에 다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기록돼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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