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말, 춘천시는 춘천역 앞 캠프 페이지 부지를 새롭게 개발하면서 영상 콘텐츠 산업과 VFX(시각효과)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한 도시가 미래 산업을 중심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투자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특히 지금 같은 글로벌 콘텐츠 경쟁 시대에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저처럼 영상 후반작업(VFX) 분야에서 헐리우드에서 활동해온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춘천은 앞으로 아주 흥미로운 변화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춘천시가 참고하고자 하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캐나다의 밴쿠버입니다. 밴쿠버는 지금은 세계적인 영상 콘텐츠 도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밴쿠버는 자연환경이 좋고 조용한 도시였지만, 콘텐츠 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의 제작사들이 모이는 영상 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했습니다.
밴쿠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영상 제작에 필요한 인프라를 계획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촬영 스튜디오, 편집실, 후반작업 스튜디오 등이 모여 있는 제작 단지를 조성하면서, 영화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춘천도 캠프 페이지와 같은 넓은 부지가 있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제작 단지를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더불어, 도심과 자연이 함께 있는 도시 구조는 콘텐츠 제작자들이 특히 선호하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둘째,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시스템이 밴쿠버의 핵심이었습니다. 밴쿠버는 대학교와 전문 교육 기관에서 영상 제작, 시각효과, 애니메이션,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체계적으로 교육했고, 이렇게 길러진 인력들이 바로 산업 현장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연결했습니다. 춘천도 강원대학교, 한림대학교 등 교육 자원을 가지고 있으니, 지역 대학과 협력해 실무 중심의 콘텐츠 교육 과정을 만든다면 탄탄한 인재 기반을 빠르게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창작자와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생태계입니다. 밴쿠버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콘텐츠 제작사, 프리랜서 창작자, 스타트업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생태계를 만들었고, 이들이 협력하면서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춘천도 다양한 규모의 제작사, 창작자들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만든다면, 밴쿠버처럼 역동적인 산업 생태계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은 AI 기술과 영상 기술이 융합되면서, 기존보다 훨씬 빠르고 창의적인 콘텐츠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저도 헐리우드에서 AI를 활용한 영상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기술이 가져다주는 변화는 상상 이상입니다. 춘천이 이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기술 기반의 콘텐츠 산업을 일찍부터 준비한다면 단순한 영상 도시가 아닌, 미래형 콘텐츠 허브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의 결단과 실행입니다. 도시가 어떤 산업을 선택하고, 그것을 위해 어떤 기반을 다지느냐에 따라 10년, 20년 후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춘천은 이미 방향을 잡았고, 필요한 요소들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실행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춘천이 ‘한국의 밴쿠버’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점에 지금 우리가 함께 서 있다는 사실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