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그 해 여름은 뜨거웠다.
여름의 시작은 월드컵 열기로, 막바지 여름은 태풍 루사로 쓸려간 도시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서. 태풍 루사는 2002년 9월1일 동해안으로 빠져나가며 소멸, 강릉의 경우 하루만에 연평균 강수량의 62%인 870.5mm가 뿌려졌다. 생소했던 '국지성 집중호우'가 일상의 언어로 다가왔다. 그해 9월 극심한 피해를 기억하는 인상적인 장면은 마실 물이 없어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 1인당 1~2개로 제한한 물통에 물을 뜨던 모습이다. 도심의 건물 지하가 물에 잠기거나 하천은 물이 넘쳤지만 정작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어린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다니다 목이 마르다며 칭얼거리는 울음소리가 밤까지 이어졌다.
큰 강 유역은 홍수가 자주 나 둑을 쌓고 물길을 만드는 치수(治水) 사업이 지도자 최고의 덕목이 되곤 했다. 우임금이 물을 다스린다는 ‘대우치수(大禹治水)’ 고사가 대표적이다. 황하의 상습적인 범람과 침수를 고민하던 요임금은 우여곡절 끝에 당시 가장 큰 골치거리였던 황하의 홍수를 다스릴 치수사업 전문가로 곤(鯤)을 후계자로 삼는다. 하지만 곤은 9년 동안 둑을 쌓고 물길을 가로막았지만 실패해 쫒겨난다. 요임금에 이어 왕권을 물려받은 순임금은 곤의 아들인 우를 등용했다. 우는 아버지 곤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물길을 터주는 방법으로 홍수를 막고 순에 이어 임금 자리에 올라 중국 최초 왕조인 하 왕조를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물을 관리하는 인물이 천하를 얻은 셈이다.
영동지역은 선거철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들은 물 부족 해결에 대한 묘안을 내놓았지만 효과는 기대치를 밑돌았다. 크고 작은 가뭄이 일상처럼 느껴졌다. 봄이나 겨울이면 그해가 항상 최악이었으며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은 매번 말라 있었다. 속초의 경우 2000년대 들어서 2018년까지 총 4회에 걸쳐 수원 부족으로 인해 대규모 제한급수를 실시했다. 기후 변화의 영향도 한몫했겠지만 목마른 도시는 갈증에 허덕였다. 강릉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7년 6월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한때 30% 초반을 기록했다. 생활용수 공급도 초읽기 상황이었다.
2025년 여름 영동지역의 가뭄 상황은 또다시 최악이 됐다. 강릉시는 20일부터 계량기 50%를 잠그는 제한급수에 들어갔다. 대상 지역은 주민 18만명이 사용하는 홍제정수장 급수구역 전역인 시내 대부분이다. 당장 9월까지 영동지역에 큰 비 예고도 없다. 전호후랑(前虎後狼),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고 있으려니까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는 뜻으로 재앙이 끊일 새 없이 닥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있다. 처서를 앞두고 연일 30도를 넘어서는 폭염이 지속되는데 더위를 식힐 물이 없다.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지만 연일 30도를 넘는 무더위에서도 물이 없다는 비극적인 상황을 직면해야 할 18만명의 참담함이 크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