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특별기고]병오년 새해, ‘태움’에서 ‘비춤’으로

◇퇴우 정념 월정사 주지스님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말의 해를 맞아 강원도민 여러분 가정마다 부처님의 가피가 두루하시길 합장 축원드립니다. 명리학에서 병오년은 불기운이 매우 강한 해로 보고 있습니다. 불은 어둠을 밝히지만, 다스리지 못하면 스스로를 태우는 법입니다. 오늘의 시대도 꼭 그러합니다. 더 빠른 속도, 더 큰 효율을 좇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마음의 숨을 잃었습니다. 경제의 불안, 기후의 격변, 불신과 혐오의 언어가 서로의 삶을 옥죄고 있습니다. 이런 때 새해의 첫 공부는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함께 살 것인가”여야 합니다.

불교는 그 답을 늘 마음에서 찾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가르침을 다시 붙들어야 할 때입니다. 마음이 치우치면 세상도 치우쳐 보이고, 마음이 맑아지면 세상도 맑아집니다. 그래서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곧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마음으로 자비를 내라는 말이 새해의 좌표가 됩니다. 한쪽에 ‘머무는’ 순간 우리는 편 가르기로 달려가고, 그 끝은 대립과 상처뿐입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의 그림자가 짙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진영을 가르지 않습니다. 불교가 말하는 길은 승부가 아니라 중도(中道)이며, 다툼의 확장이 아니라 화쟁(和諍)입니다. 지나친 집착이 법도를 잃게 한다는 ‘집지실도 필입사로(執之失度 必入邪路)’의 경계 또한, 지금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경책입니다. 내 주장만 옳다고 움켜쥘수록 공동체의 숨통은 막히고, 결국 그 후유증은 우리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마음의 전환은 삶의 전환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강원의 산과 바다, 들과 숲이 보여주듯 세계는 ‘따로’가 아니라 ‘함께’입니다. 화엄의 세계가 말하는 인드라망처럼, 한 올의 그물코가 흔들리면 다른 그물코도 함께 떨립니다. 나의 소비가 산의 숨결을 바꾸고, 나의 편리함이 바다의 고통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생태와 기후의 위기를 남의 일로 밀어두지 말고, 내 삶의 업(業)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덜 쓰고, 덜 버리고, 덜 상처 주는 삶. 그것이 곧 수행이며 가장 현실적인 자비입니다.

저는 새해의 키워드를 ‘시민보살’에서 찾고 싶습니다. 보살의 원력은 절 안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마을과 학교, 시장과 일터에서 분별을 줄이고, 약한 이를 한 번 더 살피며, 갈등을 부추기는 말 대신 관계를 잇는 말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시민의 자리에서 짓는 보살행입니다. 사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되, 분노에 매이지 않고, 절망에 눌리지 않는 마음. 연기(緣起)를 믿고 작은 선업을 쌓아가는 태도. 결국 공동체를 살리는 힘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실천에서 나옵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강원은 산과 바다를 품은 고장이면서, 동시에 분단의 상흔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땅입니다. 평화는 회담장의 문장만으로 오지 않습니다.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는 마음, 다름을 견딜 줄 아는 인내, 그리고 일상의 신뢰가 평화의 토양이 됩니다. 젊은이는 기회의 사다리를 잃었다고 말하고, 어르신은 돌봄의 공백을 두려워합니다. 이들의 한숨을 덜어주는 일은 곧 자비의 정치요, 자비의 행정입니다. 위정자와 지도층일수록 스스로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손으로 민심을 받들어야 하며, 공동체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합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처럼, 협력과 연대는 시대의 덕목입니다.

불교에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주인으로 서면, 서 있는 그 자리가 곧 진실이라는 뜻입니다. 거창한 구호보다, 내 자리에서 먼저 분별을 내려놓고 말 한마디를 고르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약한 이웃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것. 그 작은 실천이야말로 병오년의 불기운을 ‘태움’이 아니라 ‘비춤’으로 바꾸는 수행입니다. 병오년 새해, 우리 모두 마음의 고삐를 잡고 연기의 숲을 바라보며 ‘요익중생(饒益衆生)’하는, 모든 이를 이롭게 하는 길을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도민 여러분의 삶에 늘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아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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