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정칼럼]읽기 쉬운 판결문

신일성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판사

아내에게 내가 쓴 법학 논문의 초고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아내는 그중 몇몇 문장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내 관점에서는 그 문장들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고 느껴졌다. 이때의 일을 계기로, 나는 내가 쓴 글을 통상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판사는 글을 많이 쓰는 직업이다. 애초에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이 판사의 주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결문의 주 독자는 누구인가? 판결문은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것이기 때문에, 판결문의 주 독자는 그 사건의 당사자라고 할 것이다. 물론 해당 사건의 소송대리인, 참고 판례를 조사하는 법조인 등도 판결문을 읽어보기는 하겠지만, 당사자만큼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판결문을 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판결문은 주 독자인 당사자가 읽기 쉬운 정도로 작성되어야 한다.

2007년에 법과대학 신입생으로 입학했을 때, 1학년 1학기 필수 수강 과목 중 ‘민법총칙’이 있었다. 당시 법학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민법총칙 강의를 듣게 되었고, 생소한 단어와 이해하기 어려운 판례 문구 등으로 인해 머리가 꽤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법과대학, 사법연수원, 군법무관, 재판연구원 등을 거쳐 계속 법 공부를 하였고, 지금 법학 교과서나 판례를 읽어보면, 법과대학 신입생 때 느꼈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은 많지 않다. 오랜 기간 법 공부를 하고, 판사로 임관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판결문을 작성하다 보니, 어느새 법 문장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법 문장에 젖어 들다 보니, 특정한 상황을 표현하는 최적의 단어로 법 용어가 가장 먼저 생각날 때도 있고,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에 불쑥 법 용어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법 문장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판결문을 작성하다 보니, 내가 쓴 판결문에도 그러한 경향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퇴고 과정에서 내가 판결문이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했을지라도, 통상적인 사람이 읽기에는 판결문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읽기 쉬운 판결문을 작성하려면, 통상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법원에서도 읽기 쉬운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0년에는 법원도서관에서 ‘읽기 쉬운 판결서 작성 핸드북’을 발간했고, 2024년에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청소년인 당사자를 위하여 쉬운 말로 정리한 판결의 내용’을 판결문에 덧붙이기도 했다. 또한 2024년부터는 ‘판결서 적정화 실시 재판부’를 선정하여, 읽기 쉬운 판결문을 작성함과 동시에 법관의 업무 부담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판결을 작성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한다면, 좋은 결실이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읽기 쉬운 판결문을 통하여 당사자는 판결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고, 판결은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며, 국민의 사법 접근성 또한 높아질 것이다.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법 문장을 벗어던지고, 통상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판결문을 검토한다면, 읽기 쉬운 판결문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