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본의 정치·경제에 비해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경제공동체의 중요성과 정치·외교적 견해를 알고 협력하거나 항의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행동의 근원인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게 일본학전문가들의 견해다.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을 지낸 지명관 한림대석좌교수의 말처럼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먼저 그들을 면밀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난7월 일본 교과서 독도표기 파문으로 춘천시와 일본 자매도시간의 친선 교류도 잠정 중단됐다.
그 여파로 올 하반기 체육·청소년·의회교류도 줄줄이 취소된 가운데 지난 5일∼8일까지 일본 야마구치현 호후시에서 제18회 한일 예술교류가 열렸다.
춘천예총(회장:전태원)과 호후시일한친선협회(회장:고오도쿠 미치야)가 공동주최한 이번 교류회를 동행취재 했다.
>> 야마구치현립미술관 남녀노소 관람객 몰려
이번 교류의 일정 중 하나로 지난7일 야마구치시에 있는 ‘야마구치현립미술관’을 방문했다.
강원도립미술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어 주의 깊게 볼 일이었다.
야마구치현립미술관은 1979년 개관해 ‘야마구치현의 특색을 발휘하는 향토색 풍부한 미술관’ ‘현민이 참여하는 열린 미술관’을 기본 방침으로, 상설전과 기획전 순회전을 개최하고 있다.
방문일 이었던 지난 7일(일요일)에는 가마쿠라 시대 대표적인 불상조각가인 ‘운케이’가 12세기말 제작한 목제불상(국보급 미술품)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실 입구에서는 스태프들이 ‘바를 정(正)’으로 관람객 수를 세고 있었다.
방문시간은 오후3시쯤이었는데 1,000여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입장료도 1,000엔(약1만5,000원)으로 적지 않았지만 전시실 안에는 관람객들이 몰려 어깨를 스치며 관람해야 했다.
전시실에 입장하며 가방 안에서 물병을 꺼냈는데 대기 중이던 스태프가 다가와 “실례합니다만, 전시실에서는 마실 수 없습니다”라고 친절한 말씨로 안내했다.
야마구치현립미술관은 2002년부터 ‘현민 자원봉사자 서포트 스태프 제도’를 도입, 미술관 곳곳에 스태프들이 관람 안내를 하고 있었다.
전태원춘천예총회장은 “남녀노소가 진지하게 전시물을 관람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일본 43개 현 가운데 42개 현에 현립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고 말했다.
전시실을 나오는 출구에는 야마구치현이 현내 미술관과 박물관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읽게하는 안내물이 비치돼 있었다.
야마구치현은 일본 교과서에 나올 만큼 저명한 일본 수묵화의 대가, 셋슈(雪舟 1420∼1506년)를 주제로 현내 미술관과 박물관을 연계해 홍보하고 있었다.
셋슈의 고향인 야마구치시의 ‘야마구치현립미술관’과 하기시에 있는 ‘도예박물관’, 그가 만년을 보낸 만푸쿠지절이 있는 시마네현의 ‘셋슈노 사토 기념관’등 11개 관람시설이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이 연결망에는 셋슈가 그린‘지본묵화담채사계산 수도’‘고금단가집 제8’ 외에 약 2만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호후시의 모리박물관도 포함돼 있다.
또 야마구치현이 발행하는 안내물에는 현내 관람시설을 상세히 소개하고 1곳을 방문할 때마다 기념 스탬프를 찍는 칸을 만들어 놓아 현민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있었다.
이같은 야마구치현의 문화시설들간의 유연한 네트워크 활용 운영은 도립미술관을 마치 특정지역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벌써부터 지역 간 치열한 유치전이 펼쳐져 곤혹스러워 하는 강원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 호후시에 식지 않은 한류열풍
방문에 앞서 호후시가 인구규모가 12만 명 정도 되는 지역이라고 들었을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후시는 고대문화 중심지이자 도쿠가와 시대(1603∼1867)역참 도시로 소금 선적항이 있었고 1868년까지는 스오구니(周防國)의 지방행정관청소재지로 여러 유적이 남아 있었다.
‘호후텐만구 신사’는 학문의 신을 모시고 있는 일본의 3대 신사 중 하나로 수험철 합격을 기원하는 이들이 전국에서 몰린다.
호후시는 이러한 유적과 전통축제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소개하고 있었으며 한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음에도 한국어로 번역된 안내물을 비치하고 있었다.
1998년 개관한 ‘아스피라토’는 현대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지역문화공간이었다.
약 600석 규모의 음악홀을 중심으로 전시홀과 시민홀이 운영되고 있는 아스피라토는 인근 대형상가와 인접해 도심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호후시미술전 관람을 위해 1층 시민홀에 잠시 앉아있는데, 고오도꾸 미치야 호후시일한친선협회장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안내했다.
시민홀 입구에는 호후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춘천시의 소양2교 소양강댐 애니메이션 박물관 어린이회관등을 안내하는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열풍은 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NHK뿐만 아니라 케이블 채널로 ‘대장금’ ‘그린로즈’ 등 한국의 드라마가 방송돼 일본인들도 알고 있었다.
한복과 무궁화 한글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을 남긴 미야모토씨와 도쿠히사씨는 춘천에 대한 높은 관심과 애정을 전했고 하라씨는 전자사전을 들고 한국어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사진작가 미츠오 후지씨는 “일본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한 가수만을 연말 초대하는 NHK홍백전에 올해 ‘동방신기’가 출연한다”며 “한국 가수 이수영의 팬으로 음반을 여러 장 갖고 있고 콘서트도 가고 싶다”고 간절한 말씨로 속내를 꺼내 보였다.
1975년부터 춘천시와 호후시간의 체육·문화교류에 앞장서 온 고오도쿠 미치야(83·미타지리 병원장) 호후시일한친선협회장은 “한·일은 한 때 모두 불행했던 시대도 있었지만 내일을 바라보며 ‘가깝고도 가까운 친구’로 전진해 나아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호후시 일한친선교류협회는 2009년 5월 춘천예총이 주최하는 봄내예술제 기간, 춘천을 답방해 미술·사진작품 공동전시회를 펼쳐보일 계획이다.
신하림기자 peace@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