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90만
문화일반

[사라지는 강원문화]신선이 노닐던 연못 사라지고…논·밭·갈대숲만 덩그러니

⑸ 석호

① 고성 선유담-아름답던 연못은 육지화 되면서 논과 밭으로 변해 있다. 갈대만이 과거의 연못임을 유추하게 만든다. ② 사라진 또 다른 경포호-석호의 육지화와 매립으로 사라진 경포호. 아파트, 호텔,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③ 강릉 풍호-화력발전소 석탄재 매립과 그 이후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풍호의 모습은 사라지게 됐다. 강릉·고성=김남덕기자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리 가학정·선유담

주변으로 주택단지 조성 등 개발 한창

둘레 4㎞ 달했던 강릉 하시동리 '풍호'

매립지로 바뀌더니 골프장 등 들어서

경포호 인근 진안상가·아파트·학교

100년 전만 해도 또 다른 석호였던 곳

단원 김홍도 호해정 그림에 잘 묘사

1788년 당시 경포호 일대 풍경 담겨

동해안의 석호는 자연이 만든 호수로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기도 하지만 동식물에게도 서식처를 제공하는 천혜의 장소다. 석호는 산업화에 뒤따른 개발과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선유담(仙遊潭)=경관은 시대별로 풍경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걸 보면 유행이 있나 보다. 조선의 문화 르네상스를 이끌어 간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년),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 청류(淸流) 이의성(李義聲·1775~1833년) 등은 고성 바다와 어우러진 선유담, 소나무 숲 그리고 그 안에 아늑한 쉼 공간인 정자(가학정)를 화폭에 담았다. 현재로 보면 화진포, 송지호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지만 그림으로 남겨져 전하지 않듯, 조선의 선비들은 선유담을 마음에 품고 문화로 남겼다.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리에 있는 가학정과 선유담은 선조들의 풍류문화를 엿볼 수 있는 지명이다. '신선이 유람하는 연못'이라는 의미와 학을 탄다는 이름에서 우리는 선조들의 여유로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국도변에서 송지호 모텔 바로 옆길로 들어가면 선유담 펜션이 보인다. 여기에 주차를 하고 펜션 오른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년)의 글씨체가 바위에 암각돼 있다. 옛 그림 속의 선유담은 물고기들과 새들이 한가롭게 날갯짓 하며 놀던 호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육지화되면서 신선들이 놀던 연못은 사라졌고 논과 밭으로 일부는 갈대숲으로 남아 있다. 현재도 7번 국도변에 위치한 선유담 주변은 주택단지가 조성되는 등 개발 붐이 일고 있다.

■호해정과 경포호=단원 김홍도가 그린 호해정은 1788년 당시 경포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은 호수가 매립돼 현대아파트, 진안상가, 경포대초교 등 상가와 민가들이 들어섰다. 100년 전만 해도 이곳은 경포호와 연결된 또 다른 석호였다. 단원의 호해정 그림은 당시 상황이 잘 묘사돼 있다. 정자 앞엔 배가 정박해 있고 호수 안 바위엔 새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멀리 바다 방향으로는 흰 모래밭과 오리바위가 있다. 경포대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호해정은 경포호의 또 다른 비경으로 조선 최고의 화원의 눈을 사로잡아 그림으로 남겨질 정도였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년)도 호수 주변의 호해정에서 머물며 강릉지역 선비들에게 학문과 시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진안상가가 올해 마이삭과 하이선 등 연이은 태풍으로 침수됐다. 해마다 비가 오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과거 습지 안에 건축된 진안상가와 경포대초교는 방송 뉴스 화면에 초대된다. 유입 인구가 늘어나면서 1968년 경포대초교가 개교한 후 1983년 진안상가가 준공됐으며 1998년 경포 현대아파트도 건축돼 11개동 400여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스카이베이, 라카이샌드파인 등 대형 건물과 주택, 펜션 등 숙박시설이 들어서는 중이다.

■풍호=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에 위치한 풍호는 현재 작은 웅덩이로 존재감을 잃고 있다. 한국남동발전 영동에코발전본부는 1970년대 1호기 건설계획을 추진, 1972년 12월12일 처음으로 전력을 생산했다. 2호기가 1979년 10월에 준공됨으로써 당시 석탄화력발전소 중에 국내 최대 시설용량을 보유하게 됐다. 발전소는 발전에 사용하고 나온 석탄재를 풍호에 버리기 시작해 40년 뒤 호수는 매립됐다. 호수였던 주변은 갈대만이 과거의 흔적을 회상하고 있다. 또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관광기반을 구축한다면서 갈대밭을 정리해 골프장을 조성, 호수는 사람들의 기억과 지도에서 사라졌다.

원래 풍호는 호수 둘레가 4㎞ 정도 되는 경포 버금가는 석호였다. 1613년 강릉부사로 부임한 정경세(鄭經世·1563~1633년), 강백년(姜栢年·1603~1681년) 등이 시를 남기는 등 주변의 한송정과 더불어 강릉 문화의 상징이었다.

당시 풍호의 진면목은 연꽃이었다. 만발한 연꽃을 감상하기 위해 배를 띄우자 바닷가에서 시작한 바람은 향기를 실어 날랐다. 호수의 사라짐을 목격한 주민들은 또 다른 석호 뒷개에서 2009년부터 풍호 연꽃축제를 열고 있다. 과거 선조들이 남긴 자연유산을 살리기 위한 첫걸음을 딛고 있다.

김남덕·오석기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