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신혼부부 중에 히말라야로 신혼여행을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설악아씨'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오지여행가 문승영(41)씨가 바로 얼마 안 되는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고개만 들면 설악산이 보이는 고성에서 태어나 고교생 때 속초로 이사를 온 그녀는 대학에서 지리교육학을 전공하고 학원 강사로 일하다 산을, 히말라야를 알게 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칸첸중가~마칼루~에베레스트 구간을 연속 횡단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한국인 최초로 극한의 루트(Extreme Route)라고 불리는 1,700㎞의 네팔 히말라야 횡단 트레일(Great Himalaya Trail)을 완주했다. 강연과 함께 적십자 외설악 산악구조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설산을 누비고 다니는 산악인답게 첫인상이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태백산 등반 후 산의 매력에 빠져…남편도 파키스탄 트레킹서 만나
산악구조대원 활동 등 눈길…문씨 “전세계서 설악산 가장 아름다워”
■처음 산을 접한 것은 언제인가요=“28세 때 서울의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던 겨울이었는데 친구가 주말에 태백산에 눈 구경을 가자고 해 따라나섰는데 첫눈에 반했죠. 처음 산에 갔을 땐 힘들게 올라간 만큼 성취감이 좋았고 설경이 멋있었어요. 태백산에 다녀온 뒤 만반의 준비를 하고 2주 있다가 서울 근교 산으로 다니기 시작하고 산악회에도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산에 빠졌죠.”
■산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처음엔 성취감이었어요. 깊이 매료된 건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니며 산+사람, 한국에서 같이 다녔던 동료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산자락 밑의 사람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설악산도 밑을 보니 사람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사람이 보이고 과정도 보이니까 갔다 오니 든든하더라고요. 전문산악인이라고 하기엔 아닌 것 같고, 제 마음가짐은 똑같아요. 정복보다 즐기는 마음이 커요.”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횡단에 중점을 뒀다고 하는데 무슨 얘기인가요=“네팔에 120~130개의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데 동에서 서로 횡단하다 보면 다양한 민족을 만날 수 있어 트레킹의 종합선물세트 같아요. 한 번 하려면 5개월 정도 걸리는데 위험한 길도 있고, 비용적인 측면 그런 것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도전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제가 처음이에요. 서양 사람들 중에서는 제가 걸은 루트로는 10명도 안 돼요. 여자 중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에서 최초라고 하는데, 몇 명 도전 안 하는데 거기서 1등 하면 뭐해요?(웃음)”
■남편도 산에서 만났다고 하던데=“남편은 파키스탄 트레킹 갔을 때 동행이었어요. 산에 사진 찍으러 가고 풍경 좋아하는 사람이죠. 남자가 여자를 산에 데리고 간다는 표현을 하는데 남편은 고산병에 걸려 제가 오히려 짐이라고 불렀죠. 산에 가서 1박, 2박은 물론 한 달짜리 해외 트레킹도 하는데 그래도 남편이 응원해 주지 않았다면 히말라야 트레킹 완성도 못 했죠. 나갔다 오면 남편에게 잘 해요.(함박웃음)”
■세계 각국의 산을 다녀봤을 텐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산은 어딥니까=“세계적으로 통틀어 설악산이죠. 설악 같은 산이 없어요. 히말라야를 횡단했지만 설악산은 힘들어요. 몇 번이나 울고 내려왔어요. 설악산은 모든 걸 내려놓게 하는 산이에요.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봐도 멋있어요. 설악은 완벽한 미를 갖추고 있는 산이에요.”
■산악구조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1년 반 정도 됐는데, 히말라야 횡단하고 나니까 사람이 많이 보였어요. 횡단까지는 나만을 위한 산이었다면, 남을 위한 산을 다녀보고 싶더라고요.'남을 위한 산을 다녀보자'라는 생각 때문에 속초의 친한 오라버니인 안명득 대장님의 권유로 설악산적십자구조대에서 활동하게 됐어요. 속초에서 거주하는 게 아니니까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은 못 하지만 훈련이라도 열심히 하고 SNS를 통해 알리는 것도 대원으로서 일조한다고 위안을 삼죠.”
■'산'을 정의한다면=“제 영혼을 비추는 거울. 산을 통해 횡단 때처럼 제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돌아보게 하죠.”
■히말라야 트레킹하는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셰르파 등 감정노동 하는 사람이 많아요. 어떨 땐 그들이 미워질 때도 있죠. 그럴 때 저 사람도 누구의 소중한 남편, 자식, 아버지인데 '내가 돈 몇 푼 줬다고 막 대하면 안 되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꽃의 눈으로 보면 모두 꽃으로 보이고 가시로 보면 가시로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좋은 눈으로 보면 미울 게 없죠. 트레킹은 즐기러 가는 거니까.”
속초=정익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