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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바람 논쟁'

계절마다 바람(風)의 이름이 있다. 봄에 부는 바람을 새로 부는 바람이라고 해 '샛바람'이라고 부른다. 이 바람이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푄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높은 곳에서 부는 샛바람인 '높새바람'이다. 여름에는 남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남해에서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게 '맞바람'이다. 가을에는 서풍으로 바뀌는데 이를 '하늬바람'이라고 한다. 가을에 부는 바람을 줄여 '갈바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겨울에 북쪽에서 부는 바람은 '뒤바람'이다. ▼바람은 형체가 없다. 언제 어디서 불지, 어느 쪽을 향할지, 얼마나 셀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변화무쌍한 특성 때문인지 바람은 시나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바람은 정치 거물들이 위기를 맞거나 중요한 길목에 설 때 자주 인용하는 문구에 나오기도 한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2003년 당시 “꽃잎이 진다고 해서 바람을 탓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사건'으로 구속돼 구치소 수감 전 기자들 앞에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란 조지훈의 시 낙화의 첫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저항시인 김수영의 시 '풀'에 나오는 바람은 1970년대 초 군부 독재체제에서 기댈 곳 없는 민초(풀)를 짓밟은 가해자를 상징한다.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풀이)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에서 보듯 시인은 민중의 아픔과 고통을 표현하면서 민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북한 원자력발전소 건설 지원 의혹으로 정치권이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시끄럽다. 여야가 북풍(北風) 공작 등의 용어들까지 재소환하며 코로나19 위기를 무색하게 하는 '바람 정쟁'에 휘말려 있다. 4월에 치러질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가 임박한 상황과 맞물려 때아닌 이념 논쟁으로 번져 국민이 또다시 양분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먹고살 일을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는 이때 여야의 때아닌 '바람 논쟁'에 국민은 피곤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샛바람'은 언제 불 것인가.

권혁순논설주간·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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