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폐는 상거래의 발달과 함께 지급의 편리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물물교환으로 시작돼 유용한 도구나 귀중품, 그리고 금속화폐를 거쳐 오늘날의 현금으로 발전됐다.
최근에는 신용카드나 모바일결제 등 비현금 지급수단의 사용이 크게 늘면서 화폐를 대표하는 현금의 아성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중 현금을 사용한 지급 건수의 비중은 2017년 대비 9.7%포인트 하락한 26.4%를 기록했다. 비현금 지급수단을 통한 상거래가 늘면 먼저 유동성 흐름을 관찰하는 것이 용이해져 중앙은행의 경제동향 분석 및 통화정책 수행에 도움이 된다. 또 현금 관리비용도 절감하고, 대부분의 지급결제 행위를 추적할 수 있어 탈세를 차단하고 자금세탁을 방지한다. 개인 입장에서도 현금의 분실이나 위조, 도난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부수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금 미취급 매장의 확산은 금융 소외계층의 기본적 소비활동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모바일기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이나 저소득층·외국인에게 현금은 여전히 편리한 수단이다. 자연재해로 전산망이 마비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현금 사용의 가능성은 반드시 확보돼야만 한다.
주요 선진국들도 이러한 한계를 고려해 현금 없는 사회의 섣부른 도래를 경계하고 현금 사용 선택권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뉴욕, 필라델피아 등은 소매점과 음식점 등이 현금 사용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조례가 통과됐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현금 사용 거부 사례가 많지 않지만 상거래 시 현금 사용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현금 사용 선택권 보장을 독려하는 홍보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현금 사용이 배제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을 고려할 때 기본적인 지급수단으로서 유용성을 갖는 현금 사용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가운데 현금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비현금 지급수단의 사용을 활발히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비현금 지급수단의 확산을 현금을 대체하는 ‘화폐의 진화'가 아닌 현금과 공생하는 ‘화폐 선택의 다양화'로 보는 것이다.
현금 사용을 원하는 소비자가 스스로 지급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만 위기 상황에서도 지급 결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유지돼 경제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