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봉(高捧). 그릇에 밥을 담을 때 마치 봉우리처럼 수북하게 쌓아 담는 모습을 말한다. 고봉은 밥 한 술 뜨는 것조차 어려웠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미덕'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그릇을 넘쳐 솟아난 부분만 먹고 남은 밥은 머슴들이 함께 나눠 먹도록 하는 일종의 배려였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요즘의 고봉은 ‘부족함 없이 풍요로워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밥 한 공기로 표현하는 정겨움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밥알 가득한 밥그릇을 앞에 두고서도 뭔가 모를 ‘부족함'이 느껴졌던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무래도 삶의 터전인 강원도가 지독한 부족함에 시달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에 따른 각종 부족함을 몸소 체감하고 있는 경제계 소식을 수첩에 담고 밥상을 마주하면 맛있는 밥조차도 억지로 집어삼켰던 기억이 많다. 자영업자는 단연 손님이 부족했을 것이다. 급감한 매출에 또 다시 부족함을 느꼈을 테다. 구직자에게는 일자리가, 기업에게는 판로가, 기관에게는 재정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연결고리가 떠오른다. 이렇게 이어지는 강원도의 부족함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인구 부족', ‘출생아·혼인건수 부족'. 경제부에 몸담은 수년간 셀 수 없이 자주 다뤘던 주제다. 예로부터 길과 상권이 생기고, 도시가 조성되는 것은 사람이 붐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강원도는 이를 견인할 인구가 부족하다. 지난해 10월 인구동향을 보면 도내 사망자가 출생아 수를 두 배가량 웃돌아 한 달 만에 인구 539명이 자연감소했다. 생을 마감하는 사람의 속도를 새로운 성장 동력원인 출생아가 메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부족의 연속은 고용시장에서도 이어졌다. 지난해 12월에만 8개의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결과는 ‘탈락'뿐이었다는 취업준비생의 이야기는 깊은 한숨을 자아냈다. 기업은 나름대로 필요한 인력을 찾지 못해 안달이었다. 다행히 강원도에서 ‘강원형 취직사회책임제'라는 전국 최초의 고용활성화 방안을 도입·추진했고, 수혜기업과 구직자가 고용 창출·매출 증진 효과를 거둔 것을 보면서 한숨의 깊이가 그나마 줄었다.
이렇듯 부족함뿐이었던 강원도와 달리 과분할 정도로 풍요로운 소식이 있다. 바로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경제 공약이다. 기울어진 자영업계를 위한 100조원 상당의 피해 보상 지원, 주거 안정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저마다 내건 경제 공약은 보고 듣기만 해도 배부를 지경이다. 의문은 여기서 나온다. 경제 대통령을 외쳤던 여러 인물이 뇌리를 스치지만 결국 민생은 돌고 돌아 그 자리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국민보다는 본인의 배를 채우기 급급해 자신있게 내걸었던 경제 공약들이 결국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했던 사례도 수두룩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유례없는 위기로 부족함에 허덕이고 있는 현재다. 이제 국민에게 고봉밥의 포만감을 선사할 진정한 경제 대통령을 기다려 본다. 억지로 삼켰던 고봉밥은 언제쯤 맛있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