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새 절기도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벌레들이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는 경칩(驚蟄)을 보내고 3월을 맞았다. 아직 평년보다 강수량도 적고 날씨도 꽃샘추위 손아귀에 있어 따스한 햇살 한 줌도 긴요한 시기다.
필자는 1992년 강릉문화원에 입사해 올해로 30년 나이테가 새겨진 문화농부 생활을 마감하고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 새로운 도전의 길을 나선다.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하지만, 다른 속내로는 아쉬움이 많은 결정이었다. 먼저, 필자를 지금까지 이끌어 주고, 지혜와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한량없는 감사를 드린다.
생각해보면, 지난 30년의 세월은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그랬고, 문화 공동체와 함께 희망찬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서 그랬다. 물론 그 과정에는 순경(順境)도 역경(逆境)도 숱하게 많았고, 불면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강릉문화원을 제일로 만들겠다는 각오와 사명감으로 온 몸을 던져 일해야 했고, 또 나름 성과를 이루기 위해 더 고민하고 땀 흘려야 했다. 때로는 문화 가족분들께서 주신 과분한 사랑이, 어깨를 짓누르는 막중한 책임감이 돼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멈춰 서 있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불편한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2000년 강릉문화원사를 신축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모에서부터 설계, 신축까지 마무리하며 몰입과 치열한 열정이 가장 컸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임영대종각 건립과 강릉단오제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걸작' 등록도 이 문화농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사건이었다. 이때 비로소 강릉지역에 문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강릉문화원은 오늘보다 아름다운 내일에 문화를 심고 가꿔 전국 유수에 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지금 문화분권, 문화주권, 문화도시, 문화산업 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필자의 오랜 경험상 ‘문화는 휘영청 떠오른 달빛'과 같다. 수면에 파동을 내지 않은 채 호수 깊이 비추는 달빛처럼 문화는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의 마음속 깊은 곳을 은은하게 비춰준다.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지만, 문화에 베인 상처는 영감을 준다. 문화는 위 아래 따로 없이 스며드는 우리 삶의 공기이기 때문이다.
수류화개(水流花開), 즉 ‘물이 흐르니 꽃이 핀다'는 말이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강원도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한 강릉의 문화분권·문화주권·문화도시·문화산업이 문화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돼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필자는 강릉문화의 꽃향기를 실어 나르는 바람잡이의 역할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