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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월요칼럼]기억과 평화를 위한 민주주의

이동기 강원대 평화학과 교수

역사적 비극과 고통의 사건 현장이 ‘기억의 장소’(site of memory)로 바뀌고 있다. 지구 도처에서 진행되는 보편적인 ‘기억문화’(culture of remembrance) 양상이다. 유럽 전역에서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 공산주의 인권유린을 주제로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 역사 기념관과 유적지로 바뀌고 있다. 한국 사회도 식민 폭력과 국가폭력 및 분단의 현장에 역사 기념관 건립이 붐을 맞았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는 이미 민주인권기념관의 신축 건물 공사가 진행 중이고, 광주에서는 옛 전남 도청 자리에 5.18 민주화운동을 다룰 기념관이 준비 중이다.

국가폭력과 전쟁은 단순히 비판하고 극복해야 할 상처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치공동체는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상호작용과 집단 경험을 갖는다. 그것은 공동체가 긍정적 가치를 찾아 자신을 갱신할 수 있는 자산이다. 공동체는 집단적 기억과 역사 기념을 통해 민주주의와 평화를 추상적인 규범이나 엄숙한 ‘헌정질서’로서가 아니라 시민 개인의 생명과 권리, 자유와 안전, 공생과 포용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기념관 건립은 환영받아 마땅하다.

다만 문제들이 많다. 먼저, 건립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정치 이익이나 행정 편의주의 또는 지역 개발주의와 결탁한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 건립을 준비 중인 기념관 기획안과 계획서들을 보면, 그것이 평화로 위장한 신종 토건 사업인지, 아니면 ‘평화 연극’장 건축 작업인지 알 길이 없다. 일부 행정 당국과 소수의 관계자가 독점적으로 건립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또 실제 역사의 사실성에 충실하기보다는 예술 재현과 가공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폭력과 전쟁의 역사 관련 기념관 건립과 운영에 대해 여러 선언과 규범들이 존재한다. 다원적이고 비위계적인 토론의 중요성, 학문적 전문성의 존중, 역사 사료와 자료의 사실성 존중, 방문객에 대한 억지 감정 조작 금지 등 모두 꼼꼼히 살펴 건립 과정에서부터 적극 반영하고 실천해야 한다.

강원도도 약 1년 전쯤 철원 백마고지 전적비 인근에 ‘화살머리 고지 평화기념관’을 건립한다고 밝혔다. 건립 총사업비 283억 원 중 사업비 12억 원을 포함한 191억 원을 확보해 2025년까지 연차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화살머리 고지 평화기념관'은 지하 1층과 지상 3층 규모로 조성한 라키비움(도서관과 기록관과 박물관)으로 구상되었다. 사실 나는 2020년과 2021년 초 그 평화기념관 건립을 주관하는 단위로부터 ‘자문위원’을 위촉받아 승낙했다. 그 후 딱 한 번 건립구상의 용역 연구 결과라며 기괴한 종이 쪼가리가 몇 장 날라 왔다. 학문적 근거도 빈약했고, 구상 자체가 모순투성이였다. 그것은 아마추어리즘의 극치였다. 비판하는 자문 의견을 보냈더니 더는 연락이 없었다. 내가 자문위원인지 아닌지는 나도 관심이 없지만, 그 사업의 구상은 널리 알려져야 한다. 그것은 강원도와 한국 사회 공론장의 논쟁과 토론 주제가 되어야 한다.

강원도의 새 권력이 그 기념관의 내용과 방향을 또 어떻게 마음대로 바꿀지 생각하면 벌써 조마조마하다. ‘화살머리 고지 평화기념관’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는 애초에 더 많이 논의하고 학문적 전문성에 기초해야 했었다. 이제 새 정치 권력자들과 아마추어들이 제 마음대로 기념관을 짓고 ‘평화’ 쇼를 벌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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