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신군부에 맞서며 아군간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라"고 했던 영월 출신 이건영 당시 육군 3군사령관이 11일 오전 8시45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7세.
고 이건영 장군은 1926년 강원도 영월군에서 이성행(李星行)과 진주 강씨 강성호(姜聲湖)의 딸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이후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 이시행(李旹行)의 양자로 입적됐다. 제천 송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전학가서 원산 난곡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한 이후 육군사관학교 제7기 과정을 졸업했다.
육군 장교 임관 후 1969년 월남사령부 부사령관, 1976년 국방부 관리차관보, 1977년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1979년 2월부터 3군야전군사령관으로 근무했다. 12·12 당시 "(하나회의) 불순한 장난"이라고 보고 막으려고 했지만, 장태완(1931∼2010) 당시 수도경비사령관과 달리 아군 간의 교전을 우려해 병력 이동을 막았다. 1995년 고인과 군 관계자들 간의 전화 통화 녹음(약 1시간15분 분량)이 공개되면서 "12·12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1980년 1월 강제 예편 후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과 연락하며 병력 동원 등 조직적인 저항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보안사 수사를 받았다. 1982년 1월 마사회장으로 취임해 9년간 재임하며 뚝섬 경마 36년을 끝내고 1989년 9월 과천경마장을 개장했다.
1992년에는 제14대 총선에서 통일국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대선 후 1993년 민자당으로 옮겼지만, 12·12 관련 사법처리 때 증인으로 나서 하나회 관련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데 일조했다. 1996년 회고록 '패자의 승리'를 출간했다. 이 회고록에서 "경위야 어찌됐건 불행한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 때문에 자신의 일생에 어두운 과거로 남게 됐고, 항상 국민과 전우들에게 죄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2남2녀(이명희·이대성·이학성·이해성)와 며느리 정송옥·장혜정씨, 사위 백남근·윤영섭씨 등이 있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육군 장교로 복무했다. 발인 14일 오전 6시50분, 장지 국립서울현충원, 빈소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 연락처는 02-2258-5940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