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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출신 이건영 전 3군사령관 별세…12·12 쿠데타 당시 신군부에 맞서

◇이건영 전 육군 3군사령관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신군부에 맞서며 아군간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라"고 했던 영월 출신 이건영 당시 육군 3군사령관이 11일 오전 8시45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7세.

고 이건영 장군은 1926년 강원도 영월군에서 이성행(李星行)과 진주 강씨 강성호(姜聲湖)의 딸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이후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 이시행(李旹行)의 양자로 입적됐다. 제천 송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전학가서 원산 난곡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한 이후 육군사관학교 제7기 과정을 졸업했다.

육군 장교 임관 후 1969년 월남사령부 부사령관, 1976년 국방부 관리차관보, 1977년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1979년 2월부터 3군야전군사령관으로 근무했다. 12·12 당시 "(하나회의) 불순한 장난"이라고 보고 막으려고 했지만, 장태완(1931∼2010) 당시 수도경비사령관과 달리 아군 간의 교전을 우려해 병력 이동을 막았다. 1995년 고인과 군 관계자들 간의 전화 통화 녹음(약 1시간15분 분량)이 공개되면서 "12·12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1980년 1월 강제 예편 후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과 연락하며 병력 동원 등 조직적인 저항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보안사 수사를 받았다. 1982년 1월 마사회장으로 취임해 9년간 재임하며 뚝섬 경마 36년을 끝내고 1989년 9월 과천경마장을 개장했다.

1992년에는 제14대 총선에서 통일국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대선 후 1993년 민자당으로 옮겼지만, 12·12 관련 사법처리 때 증인으로 나서 하나회 관련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데 일조했다. 1996년 회고록 '패자의 승리'를 출간했다. 이 회고록에서 "경위야 어찌됐건 불행한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 때문에 자신의 일생에 어두운 과거로 남게 됐고, 항상 국민과 전우들에게 죄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2남2녀(이명희·이대성·이학성·이해성)와 며느리 정송옥·장혜정씨, 사위 백남근·윤영섭씨 등이 있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육군 장교로 복무했다. 발인 14일 오전 6시50분, 장지 국립서울현충원, 빈소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 연락처는 02-2258-5940이다.

[독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