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는 임대차와 관련해 분쟁이 생길 경우 당사자들의 합의를 도와주는 기관으로 법원의 재판이나 조정절차보다 신속하고 경제적인 장점이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범위 내에서 당사자들의 합의를 유도하는데 법에 명확하게 규정돼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합의가 잘 되는 편이다. 예를 들어 '계약갱신요구권은 임대차기간 만료 전 6개월에서 2개월 사이에 행사해야(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 3)' 하고, ‘임대차계약이 묵시적 갱신이 된 경우 임차인의 계약 해지 통보 후 3개월 뒤에 계약이 해지된다(동 법 제6조의 2)’는 등의 규정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에게 잘 설명하면 납득을 하고 화해가 쉽게 이뤄진다. 또한 임대차계약서의 조항 자체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거나 당사자 사이에 명확하게 합의가 된 사안들에 대해서도 다툼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임대인의 유지·수선의무'나 '임차인의 원상회복' 등 법에서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범위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에는 다툼이 많고, 이 경우 판례가 있다면 판례의 해석을 따라 판단해 조정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임차목적물의 벽지나 장판의 교체가 필요한 경우에 판례는 사안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고 있는데, 조정위원회도 그에 따라 벽에 낙서를 했거나 이사하다가 장판이 찢어지는 경우 등에는 임차인이 원상회복의무를 부담하고, 일상생활에 의한 경미한 손상인 경우에는 임대인이 부담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지 못하는 부분을 법원의 판결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므로 조정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하되 판례의 태도를 고려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판례가 변경된 경우에는 임대차분쟁위원회의 분쟁해결방향도 바뀌게 된다. 지난 연재 때 임대인의 실거주사유로 갱신거절시 이에 대한 증명책임은 임차인에게 있다고 알려드린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에서 2심의 판결을 파기하고 임대인에게 실거주 계획에 대한 증명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판시를 했다. 기존의 1심과 2심 판결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때 임대인의 실거주 사유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대법원은 임대인의 실거주 의사가 꾸며낸 것이 아니라 진정하다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갱신거절이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판례에서 문제되는 임대인의 실거주 사유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사업이 어려워져 서울의 다른 아파트도 처분하고, 제주 국제학교에 다니던 자녀도 서울의 해당 아파트로 이사한다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 살펴본 결과 임대인이 제주도에서 서울로 전학이나 이사를 준비한 사정도 없었고 서울의 다른 아파트도 처분하지 않은 상태여서 임대인의 실거주 사유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됐다.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해 임대차법이 개정된 점을 고려해 이러한 판결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같은 사건이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다면 이번에는 임대인에게 증명책임이 있어 임대인이 실거주사유를 증명하도록 권고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