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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 눈물이 메마른 장례식

최승민 춘천시노인회장

겨울과 여름에는 유독 돌아가시는 어르신이 많아 장례예식장이 성시를 이룬다. 운동량이 줄어들면서 ‘방콕’ 신세를 면키 어렵기 때문에 면역력도 떨어져 감기에 쉽게 걸릴 뿐 아니라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치료를 소홀히 하면 폐렴 등 치명적인 병으로 키워 생명을 잃는 것이 다반사다.

그런데 병사 또는 사고사 등으로 운명하면 일단 살던 집 대신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겨 절차를 협의하게 되는데 대부분 예식장의 매뉴얼에 따라 염습, 입관 등의 순서를 마치게 된다. 관은 임시 냉동 보관실로 옮겨져 실제 가족들은 시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고작 30분 안팎이며 꽁꽁 언 관은 발인식을 끝으로 식장을 떠나면 일단 예식장 의식은 끝나게 된다. 이후 마지막 안식을 위한 매장 또는 납골묘 봉안당으로 유골을 모시면 장례 절차는 모두 끝나게 된다.

그런데 요즘 슬퍼해야 할 유족들의 우는 모습과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전혀 없는 것 같아 정말 희한한 세상에 사는 느낌이다. 장례는 침묵과 정숙이 따른 경건한 예식인 만큼 주위에 눈총을 받을 만치 소리를 내며 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우는 소리가 사라진 요즘 장례식 세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울음은 슬플 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유일한 표현 방식이며 분위기에 따라 소리 내 우는 통곡, 남 보기가 수줍어 눈물만 흘리는 조용한 울음 등을 들 수 있는데 대부분 장례 절차에 따라 우는 통곡은 들어 본 적이 까마득한 기억으로 아물거린다.

나는 가끔 친구의 부음을 받고 장례예식장과 장지를 찾을 때가 있다. 생전에 효심이 지극하다고 자랑하던 상주도 화장장의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부모의 관을 옮기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한 시간 후 무덤덤한 표정으로 유골을 넘겨받는 순간에도 유족들의 울음과 눈물은 메말라 주변 조객들을 당혹스럽게 할 때가 있다.

나는 5세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염습, 입관, 토롱, 운구(상여) 하관 등의 장례 진행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굴건제복을 입으시고 여름철 복더위에도 7일장을 치르며 곡은 그치지 않고 밤을 지새면서 조객을 맞으셨고 홍천군 서면에 살고 계시는 고모가 부고를 늦게 받아 다음 날 도착하자 쪽머리를 풀고 통곡을 하시던 그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리고 1952년 6월 전쟁이 한창일 때 우리 가족은 피난 생활을 접고 집으로 와 농사를 지으면서 끼니를 때우던 어려운 시절 어머니께서는 산후조리를 못 해 39세에 돌아가신 비운을 맞게 됐다. 어머니 시신 곁에서 울음으로 밤을 지새던 기억은 내가 평생 흘린 눈물의 전부일지도 모를 것 같다. 북망산천의 수많은 묫자리는 후손들의 눈물방울의 흔적이며 울음소리의 저장고일지 모를진대 돌아가신 부모를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과연 옛날과 지금이 다르다는 것은 웬 말인가. 억지로라도 눈물을 흘려보라는 강요는 부질없겠지만 3일장 동안이라도 눈물샘을 열고 슬퍼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례식 풍경을 그려보는 것이 억측일까? 정말 웃기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