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동해안이 지자체와 관계기관의 무분별한 숙박시설 인허가로 자연환경 파괴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 최근 몇년간 양양 등의 바닷가를 중심으로 대형 리조트 건설사업이 우후죽순 추진됐지만 부동산시장 침체에 따라 줄줄이 좌초되며 대규모 사업부지가 방치되고 있다.
■바닷가 주변 대규모 사업부지 방치=건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동해안 바닷가 인근에서 추진되던 리조트 개발사업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한파와 건설경기 침체로 속속 연기되거나 중단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양양군 현남면 지경리 일대 15만여㎡ 부지에 호텔 등을 건축하는 지경관광지는 10년 만에 일부 공구가 착공했지만 사업부지 대부분은 현재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양양군 손양면 송전리 송전해변 일대 5만여㎡를 럭셔리 비치 리조트로 만드는 ‘카펠라 양양’ 프로젝트도 답보 상태다. 2022년 10월 착공식을 가졌지만 송전해변 바로 뒤 대상지는 허허벌판으로 남아 경관을 해치고 있다.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중광정리 일원 16만여㎡에서 추진한 프리미엄 리조트 ‘마스턴 제140호 양양PFV’, 양양군 현남면 임호정리의 ‘샤르망 골프리조트’, 양양군 강현면 금풍리·양양읍 감곡리 일원 루첸관광단지 등도 자금난과 내부 사정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4년간 숙박시설 인허가 235건=바닷가 주변 대규모 부지가 방치되면서 경관을 해치고 있는 것은 지자체와 관계기관의 무분별한 인허가 승인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속도로 개통과 유동인구 증가의 영향으로 양양군의 숙박시설(호텔·리조트·생활형숙박시설) 인허가가 급증했다. 2020년 51건, 2021년 63건, 2022년 75건, 2023년 46건 등으로 4년간 총 235건에 달한다. 하지만 민간업체의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인허가 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하면서 난개발과 후유증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의 몫이 되고 있다.
주민 김모(71·양양군현북면)씨는 “철도부지, 도유지, 군유지 등을 민간업체에게 넘기더니 결국 수년간 개발도 안 되고, 무슨 생각으로 인허가를 내준 건지 모르겠다”며 “주민과 관광객이 공존하려면 해변 인근에는 대규모 리조트가 아니라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 필요한 시설들만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송전해변에서 만난 관광객 박도헌(42)씨는 “야영장이나 주차장, 편의시설 등을 설치할 수 있는 대규모 부지가 있는데 사유재산이라서 활용되지 못한다고 하니 방문객으로서 아쉬움이 크다”면서 “바닷가 주변은 국가나 지자체가 직접 관리하면서 주민과 관광객 편의를 위한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자체 바닷가 인근 토지 매입해야”=지자체들이 현행법상 민간업체의 숙박시설 인허가 신청을 끝까지 막을 수 없어 제도 개선과 함께 장기간 미착공 건축물에 대한 행정절차 강화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또 전문가들은 지자체 등이 바닷가 주변 토지를 매입해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등의 적극행정을 강조하고 있다.
정지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정책연구실장은 “현재 강원도 동해안은 민간개발사업 등에 따라 자연환경이 이미 많이 훼손됐고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앞으로도 경관 파괴를 막기 어렵다”고 진단하며 “바닷가 황폐화를 막기 위해 해변과 개발사업 부지간 충분한 이격거리 및 완충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행정에서 해안가 인근 토지를 적극적으로 사들여 직접 자연환경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양양군 관계자는 “지역에서 추진되는 일부 대형 사업장의 진행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고 장기간 미착공의 경우 상황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