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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소설 속 강원도]도박으로 몰락해 가는 한 인간을 통해 삶의 본성 성찰

도박 중독자가 된 평범한 주부
현대 사회의 억압된 욕망 조명

2022년 김유정작가상 수상자인 위수정이 올 7월에 출간한 소설집( 우리에게 없는 밤)에 실린 ‘9’. 한 가정주부의 평범한 삶이 도박이라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며 변모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의 제목인 9는 도박게임인 바카라에서 최종 승리를 뜻하며 한계를 넘으려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은 특정되지 않았지만 주인공이 향하는 리조트 인근 특급호텔에 ‘내국인 전용 카지노’가 있다는 설정은 영락없이 강원랜드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늘어선 전당포 간판을 언급하거나 리조트 입구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면 압도적인 크기의 호텔과 화려한 정원이 나온다는 설정이 있으니 더 그렇다.

소설의 주인공은 혜신. 그는 남편 동재와 딸 민아를 둔 평범한 주부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겨울 리조트를 방문하며 처음으로 카지노를 접한 그녀는 도박의 스릴과 매혹에 빠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도박은 점점 그녀의 삶을 잠식하고, 도박으로 인한 몰락은 가정의 불화를 초래한다. 혜신은 카지노에서 만난 소라와 도박을 매개로 유대감을 형성한다.

소라는 대학원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도박에 깊이 빠진 인물로, 혜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소라와의 관계를 통해 혜신은 자신의 중독을 돌아보는 계기를 얻지만, 여전히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삶의 파탄 속에서 갈등을 겪는다. 결국 남편 동재는 그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며 이혼을 암시하지만, 혜신은 여전히 스스로의 통제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소설은 도박이라는 행위를 통해 인간이 가진 욕망의 속성과 한계를 치밀하게 탐구한다. 작품 속 혜신의 이야기는 도박이라는 스릴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고자 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은 도박을 단순한 오락이나 재물 추구의 행위로 묘사하지 않는다. 도박은 불확실성과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매혹을 드러내며,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억압된 욕망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혜신은 도박을 통해 일상적 삶에서 벗어난 스릴과 자유를 경험하지만, 이는 곧 그녀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작품은 또한 도박 공간이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연대를 형성하는 이중적 특성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혜신과 소라의 관계는 파괴적 연대의 모습을 띠며, 도박이 어떻게 인간관계의 성격을 변화시키는지 탐구하게 만든다.

심리 묘사도 탁월하다. 혜신이 도박 테이블 앞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스릴, 승리와 패배의 감정이 독자에게 생생히 전달되며, 그녀의 몰락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한다. 작가는 혜신이 도박에 빠지며 점차 자아를 잃어가는 과정을 통해 중독의 심리적 기제를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또한, 도박을 통해 보이는 인간의 욕망과 몰락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서사를 넘어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반영한다.

도박 중독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 쉽지만, 작품은 이를 현대 사회의 구조적 억압과 관계지향적 심리의 결과물로 암시한다.

다만, 소설이 중독의 구조적 원인보다는 개인의 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설은 단순히 도박 중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을 넘어 현대인의 억압된 욕망과 통제되지 않는 충동, 그리고 이로 인해 무너지는 관계와 삶을 고찰하게 만든다.

소설의 결말은 혜신이 다시 삶을 회복할 가능성과 더 깊은 파멸로 빠질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두며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은 결국 도박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대인의 삶과 본성을 성찰하게 만든다.

혜신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가진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과 매혹, 그리고 그 속에서 흔들리는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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