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내 청소년 사이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한 불법 도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친구 간 금전 거래가 일상화되고, 일부는 학교폭력이나 절도 등 2차 피해로 이어진다. 학교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은밀히 접속하다 보니 교사나 부모가 파악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라는 접근성, SNS를 통한 손쉬운 권유가 확산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된다.
■도내 곳곳 도박 중독 피해 발생=도내 A중학교에서는 지난해 한 학생이 “돈을 불려주겠다”며 동급생 10여 명에게 150만 원가량 빌렸다가 이를 알게 된 부모가 대신 갚아준 일이 벌어졌다. 이 학생은 상담치유까지 받았지만 이후에도 도박을 끊지 못했다. B중학교 교사는 최근 전국 각지의 학부모들로부터 자녀가 SNS로 B중학교 학생에게 돈을 보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해당 학생은 스포츠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전국 또래 청소년들에게서 ‘투자’ 명목으로 금전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강원 청소년 도박 경험 전국 상위권=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발표한 ‘2024 청소년 도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강원·제주권 청소년의 도박 경험률은 5.1%로 전국 평균 4.3%를 크게 웃돌았다. 강원지역 청소년의 도박 권유 경험은 28.4%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도박 홍보물 노출 경험도 56.3%로 전국 평균 53.6%를 넘었다. 실제 강원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를 찾은 청소년은 2020년 24명에서 2023년 77명으로 4년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꼬드김에 넘어간 학생들, ‘투자’로 착각=불법 도박사이트는 초반에 소액 당첨금을 제공하고 큰 도박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쓰지만, 학생들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주민등록번호 없이 가입할 수 있어 초등학생까지 노출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 도박은 ‘투자’로 인식돼 확산 속도를 더한다. 금전을 빌려준 학생도 ‘투자 실패’로 여기고 오히려 함께 도박에 빠지는 악순환도 확인되고 있다. 친구나 후배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학폭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자금 마련을 위해 고가 물품을 훔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실태조사 표본만…예방교육 실효성 의문=강원도교육청은 올해 강원교육연구원을 통해 도박 실태조사에 착수했지만, 일부 학교만 대상으로 하는 표본조사로 진행돼 정확한 전체 실태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학기 초 도박예방 교육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도내 한 교사는 “이미 도박에 빠진 학생들에게 예전 방식의 교육이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청소년 ‘도박중독’ 장기적 관리 필요=전문가들은 청소년 도박을 ‘중독성 질환’으로 보고, 장기적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권혜준 강원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팀장은 “도내 청소년 도박 문제가 이미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수준”이라며 “교육당국, 지자체, 언론이 함께 장기적인 상담·교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가 빚을 대신 갚아주면 ‘또 갚아줄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형성된다”며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