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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불출마의 울림

불출마는 때로 출마보다 큰 울림을 남긴다. 출전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한 사람의 퇴장이 아니라 그가 비켜선 자리에 남겨진 정치의 민낯을 드러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2일, 유승민 전 의원은 13일 연이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유야 다르되 방향은 같았다. 듣지 않는 조직, 그리고 기회를 잃은 중도. 그 자리를 빠져나가며 남긴 말들은 곧 정치의 거울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장부지사(丈夫之事), 일왈난지이선퇴야(一曰難之而先退也)”라 했다. 사내의 길은 어렵다 여기고 먼저 물러나는 데에도 있다는 뜻이다. 퇴장을 명예로 만드는 방식은 옛 선현들도 예외 없이 숙고했던 문제였다. 오 시장은 “이재명에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며 정치의 본령을 꺼냈고, 유 전 의원은 “보수의 연속된 탄핵, 그러나 변화 없는 당”을 지적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은 무책임한 운명론이 아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난 뒤라야 하늘의 뜻을 기다릴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이 지금껏 다한 일이 무엇인가. 기득권 수호, 윤심 탐색, 내부 배제와 축출이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퇴장한 두 사람의 공통점은 중도 확장성과 합리적 이미지, 그리고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는 이력이다. 그들은 당의 공식 노선에 편승하지 않고 오히려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다수가 침묵하는 구간에서 목소리를 냈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출마보다 분명한 메시지다. 보수 진영의 선택지는 점점 더 협소해지고 있다. ▼정치는 전장(戰場)만이 아니다. 사람이 서야 할 자리를 아는 일, 말보다 먼저 물러날 때의 무게를 감당하는 일 그것도 정치다. 오세훈, 유승민의 불출마 선언은 국민의힘이 얼마나 좁은 길을 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인 것 같다. 남은 이들의 시간은 점점 줄고 있다. 누가 당을 살리고, 누가 무너진 중도를 다시 일으킬 것인지. 그 물음 앞에 이들의 퇴장은 유서와도 같다. 떠난 자리에 책임이 남았고, 그 책임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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