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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결재의 도장이 희망을 싹틔우길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이렇게 발걸음이 무거운 적은 없었다. 투표장에 줄을 선 순간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주권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소중한 한 표가 정치권의 극단적 혼란을 바로 잡아줄 것인지도 자신이 서질 않았다. 정치권을 탓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무기력감이 유권자들의 표정에서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두 번째다. 대통령이 쫓겨나고 서둘러 사람을 찾아야 하는 황망한 선거를 치른 것이. 그것도 2017년 봄, 먼 옛적 얘기가 아니다. 그 악몽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너도 나도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 했다.

필자가 ‘적대정치’라고 호명한 혐오와 증오의 정치는 지난 8년간 국민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흩트렸다. 조용한 날이 없었고, 되는 일이 없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성숙 단계에서 위험 단계로 미끄러졌다. 정치인들은 서로 고발하기 바빴고, 남발한 입법안을 두고 진지전을 불사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사법부 우군화에 온갖 정성을 쏟았는데 수틀리면 사법부를 대놓고 욕했다. 국민들이 동원됐다. 광화문 광장은 정치적 분풀이의 세계적 명소가 됐다. ‘대통령의 실패’를 꾀하는 것이 정권 탈환의 최고의 전략이 된 한국정치에서 난제 개혁과 미래 대비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국민 통합을 외쳐도 갈라치기의 고수들이 곳곳에 매복했다. 나의 한 표가 이런 난장(亂場)을 가지런하게 정비해낼 힘이 있을까.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한국은 유럽의 소국도, 덩치만 큰 남미 국가도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 전략에 한 마디 쯤 훈수 둘 역량을 보유한 나라이고, 트럼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무역 대전(大戰)의 틈새를 찾아 생존 기회를 확보를 할 수 있는 나라다. 표를 호소하는 후보들에게선 그런 지혜와 치밀한 전략이 보이지 않았다. 오래 준비해온 선수나 급조된 선수나 매 한가지였다. 그냥 내지르거나, 두루뭉실 넘기기 일쑤였다. 화성에서 온 남자, 토성에서 온 외계인? 대선이 끝나도 국민통합과 화합정치가 가능할까. 내란세력의 완전 토벌 공약은 또 한 차례의 옥사(獄事)를 예고하고, 혁신의 자격을 소진한 보수의 통합외침은 허공중에 맴돈다. 듬직한 인물 없는 하자(瑕疵) 선거다.

선거란 주권을 위임하는 중대한 절차다. 위임하는 쪽과 위임받는 쪽 모두 지켜야할 금과옥조가 있다. 정치인이 앞세우는 민생 뒤에 시대착오적 이념정치가 번들거리는지, 권력유지를 위해 거짓과 꼼수를 부리는지 감시해야 한다. 장막 뒤에서 벌어지는 행태를 국민들이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에서는 위임받는 쪽의 책임이 더욱 커진다. 정당의 기능이 망가지면 정치는 고사한다. 경제는 헛발질 일색이었고, 정책은 현실을 들쑤셨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책임은커녕, 고소장을 들고 사법부로 달려가는 결의에 찬 장면이 수도 없이 방영됐다. 필자가 기억하건대, 지난 3년간 협의정치는 ‘개식용 금지법안’이 거의 유일했을 정도였다 (이후에 한 두건 더 있기는 했다). 궤도를 이탈한 정당정치를 바로잡을 후보는 누구인가. 투표지를 들고 한참 망설인 이유다.

투표지에 적힌 후보들이 흔쾌할 리 없는데, 곧 흔쾌해지길 기대한다. 결재의 도장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희망을 다시 걸어야 한다. 세계적 위상이 드높아진 대한민국호(號)를 끌고 대양(大洋)을 헤쳐 나갈 선장 뽑기에 미래를 걸어야 한다. 항해 목표를 세우고 항로를 분명히 보여주길 바란다. 정변이 일어나 또 다시 마음을 다치게 하는 사태, 그들만의 ‘정의’ 협곡으로 전 국민을 몰아세우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강대국의 치열한 접전과 기술혁명이 휘몰아친 지난 25년 국민들은 그런 역경의 세월을 보냈다.

국민의 바람막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딛어 미래세대에 길을 터줄 사람을 원한다. 아사달, 아사녀가 환희의 춤을 추도록 정치적 파랑(波浪)을 제대로 관리할 사람을 우리는 원한다. 하자(瑕疵) 열전(列傳) 투표지에 도장을 찍는 무거운 손이 그래도 희망을 싹틔울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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