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80만
문화일반

[조선왕조실록·의궤 톺아보기]대중매체 속 실록이야기 ⑥영화 ‘간신(中)’

- “이것이 어머니의 옷인가”… 연산군 광기의 서막, 갑자사화
- “죽어 마땅하다”는 분노, 조선을 뒤흔든 피바람의 기록들

◇ 연산군이 이세걸의 부관참시를 명하는 내용이 담긴 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5월 2일 기사.

“이것이 진정 내 어머님이 마지막에 입으셨던 옷인가?” 영화 ‘간신’ 도입부에서 연산군이 어머니 윤씨가 사약을 받을 때 입었던 피로 얼룩진 저고리(적삼)을 간신 임사홍 부자로 부터 전달 받고 읊조리 듯이 내뱉는 첫 대사다. 연산군의 광기에 불이 붙는 이 순간은 연산군의 폭군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소설의 거목 박종화가 펴낸 ‘금삼의 피(1936년)’에 등장하면서 연산군을 다룬 거의 모든 영화나 드라마에 인용(?)되는 이 장면은 조선왕조실록 등에 나오지 않는 야사지만 ‘갑자사화(甲子士禍)’의 원인을 극적으로 설명하는 도구로서는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연산군의 폭주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향으로 번져나간다. 하지만 그 시작은 갑자사화 1년 전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이세좌(李世佐)는 하사하는 술을 엎질렀으니 이는 교만 방종하여 그런 것이니…죄가 죽어 마땅합니다.(연산군일기50권, 연산 9년 9월 19일)”

영화 ‘간신’ 포스터.

트집이 잡힌 이세좌는 파직당하고 급기야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이세좌(1445~1504)는 바로 광해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직접 전달한 인물이다. 그는 이 일 이후에 사면과 유배를 반복하다가, 연산군의 명을 받고 스스로 목을 세상을 떠난. “(전략)‘위에서 너에게 죽음을 내렸으니 속히 죽도록 하라’ 하니, 세좌가 손을 모아 잡고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신이 중죄를 범하였는데 몸과 머리가 나누어짐을 면하게 되었으니…(연산군일기52권, 연산 10년 4월 9일)” 절체절명의 순간, 이세좌는 오히려 목이 베이는 참형(斬刑)을 면하게 해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연산군은 이세좌 바람을 묵살해 버리고 그의 죽음을 온전히 두지 않는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이세좌의 머리와 사지를 모두 베어 왔습니다” 하니, 임금이 전교하기를 “(그의) 목을 베어 나무에 매달라” 했다(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5월 2일·사진)” 연산군의 잔인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영화 ‘간신’의 한장면.

3월부터 불기 시작한 갑자사화의 피바람은 5월이 되면서 최고조에 달한다. 성종의 후궁들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한명회를 비롯해 이미 세상을 떠난 과거의 훈구파 핵 인물들의 묘를 파내 효수(梟首)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공개 처형과 부관참시가 줄을 이었다. 이들의 자손들은 유배를 떠나거나 교수형을 당해 목숨을 잃기 했다. 수많은 사람을 숙청하는 긴박한 순간에도 연산군은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잔치에 나오지 않는 기생을 색출하고, 남편에게 벌을 내리는가 하면, 느닷없이 환관들이 진짜 고자인지를 검사해 처벌을 내리기도 했다. 갑자사화는 연산군 특유의 폭력성과 잔인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조선의 정치사에 전례 없는 숙청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연산군의 타락은 더욱 가속화되고, 그의 사치, 방탕, 독재적인 행보는 더욱 거침없어 진다. 삼사의 왕권 견제 기능은 사실상 완전히 소멸되고, 연산군을 폐위시킨 중종반정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