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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학력 정책,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강삼영 전 도교육청 기획조정관

최근 강원교육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는 단연 ‘학력’이 있다. 2025학년도 수능 결과가 공개되면서 강원 학생들의 평균 성적이 전국 최하위권이라는 현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신경호 교육감이 당선될 당시 ‘수능 성적을 올리겠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기세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변명이 반복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다.

읽기·쓰기·수학과 같은 기본 역량은 단지 수능 성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학생들이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기본 도구이며, 배움과 성장을 책임지는 교육의 본령과 맞닿아 있다. 이처럼 중요한 학력에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름표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학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지금 도교육청이 추진 중인 정책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학력을 강조한다는 보수 교육감의 정책 방향이 정작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녁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확대 정책이다. 매년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이 사업이 ‘저녁밥 먹이는 정책’으로 전락했다는 냉소가 퍼지고 있다. 학생 참여율은 저조하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과 자원 낭비는 교육의 책임감을 무색하게 한다.

‘학력을 챙기겠다’는 선언은 책임 있는 정책과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 교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수업‧평가 혁신을 추진하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정교한 학습 전략을 설계하지 않는 이상, 고등학생들에게 저녁밥만 챙겨주는 정책은 보여주기 행정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쟁점은 대입 수시 전형이다. 최근 한 보수 교육계 인사는 뜬금없이 수시,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을 꺼냈다. 수시 제도의 복잡성과 일부 불투명성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따로 있다. 공교육이 그 복잡한 수시 제도를 제대로 안내하고 뒷받침하지 못할 때, 정보와 자원이 풍부한 수도권 학생들과 지역 학생들 사이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점이다.

도교육청이 수시 대비 전략을 체계적으로 마련하지 않으니, 강원 지역의 많은 학생과 학부모는 결국 서울 강남의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 수능 정시라고 더 공정한 것도 아니다. 이미 N수생 비율이 30%를 넘고, 조기 사교육과 고가의 ‘족집게 강사’가 판치는 시장이다. 불공정을 비판한다면 대입 경쟁 체제가 만들어내는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비판하되, 강원 학생들이 대입에서 더 나은 기회를 얻도록 지원하는 것이 공교육의 책임 있는 태도 아닐까. 수시든 정시든 중요한 건, 입시를 둘러싼 격차를 해소하려는 공공성 있는 전략, 그보다 앞서 모든 학생의 기본학력을 키우는 시스템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학력 문제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이야기할 자격은 실질적인 정책 대안을 갖춘 사람에게 있다. 지금처럼 예산은 엉뚱한 데 쓰고, 제대로 된 입시 전략과 학습 지원은 부재하면서, ‘진보교육이 학력을 망쳤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교육이 말하는 책임은, 누구를 비난하느냐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느냐에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에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표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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