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80만
기고

[법정칼럼]사람이 온다는 것, 양형조사

이보라 춘천지방법원 판사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을 읽을 때마다 나는 형사 법정을 떠올리곤 한다. 법정에 선 피고인은 단순히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범죄에 이르렀는지를 모두 품은 채, ‘한 사람의 일생’을 안고 법정에 서 있는 것이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피고인을 접하기 때문에, 기록에 드러난 사정만으로 모든 정황을 온전히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이 점에서 양형조사는 형사재판의 현실적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양형조사란 재판장이 법원조사관에게 피고인에 대한 형의 양정을 위해 필요한 사실관계와 자료를 조사·수집하도록 하는 제도다. 법원조사관은 사건 기록을 검토한 뒤, 피고인과의 면담, 심리검사, 재범위험성 평가, 참고인 진술 등을 통해 피고인의 성행과 인격 형성과정, 범죄의 심층적 원인, 피해 회복 노력 등을 조사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를 통해 재판부는 보다 적정하고 투명한 양형 판단의 기초 자료를 얻게 된다. 이러한 조사는 외형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사건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동일한 범죄행위라도 그 사람이 살아온 삶,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후의 태도에 따라 책임의 무게는 달라질 수 있다. 양형조사는 바로 그 ‘한 사람의 일생’을 깊이 들여다보려는 제도적 시도다.

법정은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장소이면서, 사건의 배경과 개인의 사정을 함께 검토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양형조사는 이 두 기능을 조화롭게 실현하는 수단이다.

이 제도는 피고인을 위한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판 절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형사소송법은 피해자의 진술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절차에서 배제돼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적지 않다. 법원조사관은 피해자가 범행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실질적인 엄벌을 원하는지 또는 피해 회복을 우선하는지를 확인한다.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양형 판단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양형조사는 결국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인간을 중심에 두려는 사법의 노력이다. 이 의미가 실질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제도를 뒷받침할 기반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양형조사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지고 있으나, 조사관의 권한과 절차, 역할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는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고, 이를 담당할 인력 또한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서류의 이면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노력, 그 작은 움직임이 바로 양형조사인 만큼, 피고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양형조사의 질과 일관성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운영도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형사재판에 누군가가 선다는 것 역시, 어마어마한 일이다.

양형조사가 그 일생을 보고, 듣고, 이해하려는 작지만 깊은 걸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