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간신’에서는 갑사사화(1504년) 이후 연산군의 타락상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흥청(興淸)’을 등장시킨다. 역사 속에 실재(實在)한 흥청은 연산군이 전국에서 미녀를 선발해 궁궐로 들여온 왕실 전속 기생 집단을 말한다. 이들을 선발하기 위해 ‘채홍사(採紅使)’라는 관리를 두기도 했는데 바로 간신 ‘임사홍(1445~1506)’이 그 역할을 했다. “채홍사 임사홍이 아뢰기를, “신이 평안·황해 두 도에서 홍녀(紅女) 20여 인을 뽑았사온데, 전에 내리신 유지(諭旨·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던 글)에 ‘자색(姿色)이 있고 음률(音律)을 알고 호기(豪氣)가 있는, 이 세 가지를 겸한 자를 뽑아오라”하셨는데 음률을 아는 자가 없으니 어찌하리까? (연산군일기59권, 연산 11년 9월 18일)” 세가지 재능을 모두 갖춘 기생이 없음을 연산군에게 보고하는 내용이다. 연산군은 “이미 선발했으니 데려와 보고하라”는 답을 내린다. 이는 연산군과 인사·행정을 담당하는 병조정랑 윤귀수의 대화로,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상당히 부적절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전국에서 선정된, 재능있는 기생을 ‘운평(運平)’이라 했고, 다시 운평 가운데 최정예 기생으로 선발된 기생들을 ‘흥청’이라고 불렀다.

흥청과 운평은 서로 말도 섞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됐다. 특히 영화에서 처럼 운평 내에서 경쟁을 하게 해 상을 주거나 흥청으로 승진(?) 시키기도 했다. “재주가 우수한 기녀에게는 매달 월급을 지급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능한 자에게는 명주를 더 주고, 그 중에도 용모가 뛰어난 자는 흥청(興淸)으로 올리는 것이 가하며…(연산군일기56권, 연산 10년 12월 23일 )” 상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벌도 내려졌다. 기생(흥청·운평·광희)들은 장악원(掌樂院·국가 공식 음악기관)을 통해 매일 시험을 치러야 했고, 실력없는 기생들에게는 최대 50대의 태형이 집행됐다. 게다가 그들의 스승, 심지어 부모에게 까지도 죄를 물었다고 하니 궁궐 안에 있는 수많은 흥청과 운평들은 항상 긴장감 속에 살아야 했다. 이러한 철저한 관리 속에도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연산군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선보이는 연회는 장대한 규모에 더해, 눈부신 화려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경회루 못가에 만세산을 만들고, 산위에 월궁을 짓고 비단을 잘라 백화처럼 장식하니… 경회루 아래에는 붉은 비단 장막을 치고서 흥청·운평 3,000여 명을 모아 노니, 생황(笙簧)과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연산군일기61권, 연산 12년 3월 17일·사진)” 연산군은 기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숙의(淑儀·종이품 후궁)를 간택한다는 명목으로 양반가문의 딸까지 자신의 노리개로 삼으려 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중죄로 다스리라는 명을 내리기 까지 한다. “전교하기를, “숙의에 마땅한 청녀(靑女·시집 안 간 여자)를 20세부터 30세까지 중외를 막론하고 간택하되, 만약 숨기거나 빼돌리면 그 가장을 중죄로 논하고…”(연산군일기63권, 연산 12년 8월 9일)” 결국 1506년(연산군 12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의 폭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흥청망청’의 어원은 이렇게 완성된다. 연산군을 폭군으로 만든 간신 임사홍은 처형 이후, 부관참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