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균형발전 역행 하는 ‘예타’
강원특별자치도가 연말을 목표로 용문~홍천 광역철도와 삼척~강릉 고속화철도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통과를 위해 정부 설득에 나선 모습은 지역이 국가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절박한 외교전’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장면은 경제성이라는 높은 벽 앞에서 지역이 정책성과 균형발전 항목을 붙들고 정부 문을 두드리는 처연한 풍경이다. 문제는 이 벽이 1999년 예타 제도 도입 이후 26년간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지역의 미래를 가르는 심판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낭비성 사업 당연히 걸러내야
예타의 본래 취지는 분명했다. 선심성, 낭비성 사업을 걸러내 국가 재정을 지키고,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투자 결정을 돕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제도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경제성 지표(B/C)가 1.0에 미치지 못하면 사실상 탈락하는 구조로 굳어졌다. 문제는 이 경제성 중심 평가가 수도권과 대도시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다. 인구와 교통량, 산업 규모가 곧 ‘수익’으로 계산되는 구조에서, 인구 밀도가 낮고 경제 규모가 작은 지역은 출발선부터 태생적으로 불리하다. 결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 목표는 평가 항목 어딘가에 작게 끼워 넣어질 뿐, 결정적 변수로 작동하지 못 한다.
용문~홍천 광역철도와 삼척~강릉 고속화철도 사례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두 노선 모두 B/C는 1.0을 밑돌 것으로 예상 된다. 하지만 그 정책적 필요성을 살펴보면, 수도권과 동부 내륙의 연결성 강화, 동해안권 고속철도망의 완성이라는 전략적 의미가 크다. 그럼에도 강원특별자치도는 정책성 점수를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중앙부처를 찾아 설문조사 자료를 내밀고, 군부대 인구와 교통 소외 해소 필요성을 읊어야 한다. 국가균형발전을 입으로 말하면서도, 제도는 지역에게 “네가 경제성부터 증명해라”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26년 전 제도가 만들어질 때와 지금의 대한민국은 다르다. 그 사이 수도권 집중은 심화됐고, 지역 소멸은 국가적 위기 단계로 진입했다. 그럼에도 예타는 여전히 ‘과거의 잣대’를 들이댄다. 한 번도 서울발 KTX가 B/C 1.0 미만으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는 이유다. 제도가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 구조적 차별에 가깝다. 물론 예타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예산 낭비를 막고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절차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제성 항목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라면, 소멸 위기 지역은 절대 국가 인프라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그 결과 지방은 중앙정부에 SOC(사회간접자본) 구축을 위해 ‘통사정’해야 하는 현실이 고착된다.현재 국가기간교통망 확충체계는 비록 국가가 그림은 그리지만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설득하고 건의하고 애원해야 떡 하나 나줘주듯 생색내는 체계다. 즉. 주민이 세금을 내고도, 인프라를 얻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다. 동서간 유일 축이었던 영동고곡도로 4차선화 할 때도, 동해고속도로 삼척연장 때도 요구때도 그랬다.
수십년 고착화 된 잣대가 문제
국가균형균형발전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제도의 설계가 수도권에 유리하게 짜여 있다면, 아무리 지역에서 지역 발전을 외쳐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이제 예타는 경제성, 정책성, 균형발전 기여도를 동등하게 평가하는 방식으로 개편돼야 한다. 특히 인구 감소와 산업 공백으로 위기에 처한 지역에는 ‘생존 가중치’를 부여하는 등 시대적 환경을 반영해야 한다. 스위스가 알프스 산간 마을에도 철도와 도로를 놓는 것은, 거기가 수익을 내서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지역에 요구하는 것은 인내와 협조다. 그렇다면 국가는 지방에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예타가 그 기회를 가로막는 문턱이 아니라 진정한 균형발전의 디딤돌이 되도록 손질해야 한다. 수십년간 고착된 잣대를 내려놓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의 소멸은 제도의 부작용이자 국가의 방치가 빚어낸 필연이 될 것이다.
제목 지금처럼 경제성 항목 절대적 비중 차지하는 구조
소멸 위기 지역, 국가 인프라 혜택 누릴 수 없어
‘생존 가중치’ 부여하는 등 시대적 환경 반영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