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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권혁순칼럼] 강원자치도 성장,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뿌리 깊은 소외 극복, 발전 담론부터 시작할 때
폐광지 사업-제2경춘국도, 지역발전 전환의 기회로
시혜 기다리는 자세로는 강원 미래 개척할 수 없어

◇권혁순 논설주간

‘강원도 소외론’과 ‘강원도 성장론’

‘강원도 소외론’과 ‘강원도 성장론’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서사로 이어진다. 뿌리 깊은 소외의 기억은 오늘날의 성장 담론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고, 새로운 기회의 문턱 앞에 선 지금, 그 간절함은 곧 강원도의 전략이 돼야 한다. 이 땅의 산맥과 골짜기가 지닌 풍경의 고요함은 한편으로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고, 깨끗한 물을 흘려보내며, 대체 불가능한 자연 자원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기능성은 종종 강원인의 삶과 권리를 가리고, 침묵과 희생만을 요구해왔다. 소양강댐은 수도권의 식수를 해결했지만 주변 지역의 생태와 주민의 삶은 외면받았다. 동해안의 발전소는 전력을 서울로 보내면서도 주민에게는 오염과 건강 위협만을 남겼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관광지로 소비되는 강원의 자연은 보전이라는 이름 아래 개발이 억제돼, 주민의 경제적 기회까지 제약받았다. 강원도 전체 면적보다 넓은 국립공원과 보호구역은 실질적으로 사람보다 자연의 권리만이 우선되도록 제도화돼왔다. 그 결과 강원인은 개발의 당사자가 아닌 통제의 객체로 머물러야 했다.

정책 우선순위에서 주변부

이러한 소외는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와 인식, 정책 우선순위에서 강원도는 늘 주변부였다. 환경보전과 안보,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은 강원도를 전국 어디보다도 엄격하게 제한했고, 심지어 ‘수혜 대상’이라는 프레임마저 씌워졌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이 소외의 구조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폐광지역 경제진흥사업과 제2경춘국도 사업의 진전은 단순한 개발 계획을 넘어 강원도의 전략적 위치를 재정의할 기회다. 태백과 삼척에 조성될 산업 클러스터는 더 이상 자원 채취의 도시가 아닌, 청정 에너지와 의료 융합 산업의 중심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태백의 청정메탄올, 삼척의 암 치료 의료클러스터는 지역경제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 지형에도 변화를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이 사업들은 강원인이 직접 참여하고 연대하며 추진됐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과거의 일방적 국책사업과 달리, 주민의 자발성이 정책의 동력이 된 것이다.

제2경춘국도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빠른 도로 하나가 놓이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과 강원 내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관광·물류·지역경제를 동시에 견인할 복합 인프라다. 이 도로가 철도와 연계되면 강원도 중북부권은 새로운 성장 축이 된다. 이제 강원도는 중앙정부의 지원만을 기다리는 '수혜자'가 아니라, 국가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전략 파트너'로 전환돼야 한다.

그러나 기회의 문은 영원히 열려 있지 않다. 사업이 성공하려면 단기적 수치 성과가 아닌, 구조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자원기반 산업의 재생은 기술력과 인재, 제도의 결합 없이는 공허한 구호로 남는다. 의료클러스터 역시 치유와 바이오 산업, 헬스케어 관광과 연계돼야 진정한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주민이 정책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정책 설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지자체간 전략과 비전 공유

지금 강원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역동적이다. 주민 스스로가 거리로 나서고, 연대를 통해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를 이끌어냈으며, 시·군 단위에서 전략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그 열정과 의지를 정부는 파트너십의 정신으로 존중해야 한다. 언제까지 중앙의 허락을 구하고, 시혜를 기다리는 자세로는 강원도의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중앙정부는 강원도의 역동성에 화답하는 방식으로, 강원도는 과거의 상처 위에 미래의 산업 구조를 정립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강원도의 소외는 지리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제도적 무관심의 결과였다. 그러나 성장의 가능성은 이제 주민의 주체성과 지역의 전략성이라는 자산으로 바뀌고 있다. 이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중앙의 언어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역의 언어로 새로운 미래를 써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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