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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공직의 가치

◇일러스트=조남원기자

한때 청년들의 장래 희망 1순위였던 공무원이 이제는 ‘기피 직종’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임금은 민간보다 낮고, 조직은 수직적이며, 악성 민원은 늘어만 간다. 국민을 섬긴다는 사명감이 언제부턴가 ‘고객은 왕’이라는 강박으로 변질되면서, 공무원의 하루는 봉사라기보다 소모전이 돼버렸다. 2025년 강원지역 지방공무원 9급 경쟁률은 1,009명(행정직군·과학기술직군) 선발에 5,637명이 몰리면서 5.6대1을 보였다. 이는 지난해 7.2대1(808명 선발, 5,808명 접수)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자 역대 최저치다.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이 있다.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인데, 오늘날 공직자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원칙을 지켜야 할 자리에서 눈치를 보게 하고, 정의를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을 강요하는 풍토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 결과 공무원은 ‘나라의 기둥’이 아니라 ‘민원 처리 창구 직원’으로 전락했다. ▼맹자는 ‘민본사상(民本思想)’을 강조하며 백성이 곧 나라의 근본이라 했다. 하지만 오늘의 민본은 백성의 고충을 풀어주는 ‘정책’이 아니라, 그 고충을 직접 떠안는 공무원 개인에게만 부과되는 듯하다. 악성 민원으로 우울증과 소송에 시달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하루에도 수십 건의 전화와 항의가 계속된다. 국민을 위한 행정은 제도와 시스템으로 풀어야 하는데, 현장 공무원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청년들이 공직의 문을 두드릴 이유는 없다. ▼지금 공무원 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경쟁률 하락이나 퇴직 증가가 아니다. ‘공직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나라를 세우는 것은 인재요, 인재를 모으는 것은 예우”라 했다. 공무원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곧 행정의 공백으로 연결되고, 그것은 시민들의 삶의 질 저하로 되돌아온다. ‘국민의 심부름꾼’이란 이름은 더 이상 미사여구가 아니다. 그것이 혹시 멸시의 다른 표현으로 변하지 않도록, 지금이야말로 공직의 의미와 처우를 근본에서 다시 설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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