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역사서인 '춘추'의 대표적인 주석서 중 하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국가가 그 시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반드시 먼저 쇠퇴하게 된다(國不復其始, 必先敝之)"
여기서 말하는 '시작(始)'은 국가의 기초 단위, 즉 지역과 마을을 뜻한다. 수천 년 전의 사서가 전하는 이 문장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렇게 정확히 꿰뚫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지금 대한민국의 곳곳에서 '시작'이 사라지고 있다. 작은 읍이 사라지고,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버스가 끊기고, 전봇대 하나 없는 마을이 행정지도에서 조용히 지워지고 있다. 이른바 '지역소멸'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고, 눈앞의 위기다.
최근 도시·군번영회연합회가 양구를 찾아 지역 최대 현안인 국도 46호선 양구~춘천 4차로 확장을 촉구했다. 이들은 "양구를 포함한 접경지역의 경우 국가 안보와 수자원 개발에 따른 각종 규제로 수십 년간 발전에서 소외돼 산업·관광 성장 동력이 제약된 데다 응급 의료시설 접근성 부족으로 주민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군 작전 차량 통행과 돌발 상황 발생 시 교통 지체가 빈번해 응급환자 이송 시 골든타임 확보가 어렵다"며 "접경지역 주민 생명권과 안전을 지키고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양구~춘천 구간 4차로 확장이 반드시 제6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국도 46호선 확장을 외친 이유는 지역 경유 고속도로와 인근 지역과 연결되는 4차선 도로가 없어 지역소멸 위기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춘천 등 대도시로의 이동을 위해서는 이 도로를 무조건 지나야 한다. 하지만 해당 도로는 대부분 왕복 2차선으로 기업 유치에 상당히 불리함이 있을 것이고, 특히 응급환자의 신속한 이송이 어렵다. 신속한 이송은 '생명'과 직결돼 있는 중대한 문제다. 이에 주민들은 제6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 반영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반가운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양구 주민들은 단지 길을 내달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간 군사규제 등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묵묵히 지역을 지켜 온 그들은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소멸 위험지역'이라는 말로 분류되며 평가받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도로는 단지 물리적 이동 수단이 아닌, 지역의 숨구멍이다. 인프라가 없으면 청년도 없고, 기업도 없고, 미래도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당시 대선 공약으로 수도권과 강원도와의 접근성 개선을 위해 국도 46호선 4차선 확장을 약속했지만, 실제 추진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나라들은 늘 지역의 힘에서 출발했다. '삼국지'의 손권이 강동지역을 안정적으로 다스려 삼국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맹자'가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고 말한 것도, 모두 뿌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한 마을을 지키지 못하면, 한 나라도 지킬 수 없다. 작은 읍·면·동 하나를 되살리지 못하면서, 거대한 수도권만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춘추좌씨전'은 말한다. 시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쇠퇴는 불가피하다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시작'은 바로 양구 같은 곳이다. 대한민국의 북쪽 끄트머리, 그러나 국가의 뿌리이기도 한 이곳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정부가 적극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가의 시작은 늘 지역이었다. 그러니 그 시작을 다시 회복하지 않으면, 국가도 언젠가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