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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월요칼럼]인공지능(AI) 시대 변호사의 역할

박경옥 법무법인(유) 대륜 변호사

최근 몇 년 사이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법조영역에서도 챗봇, 생성형 AI, 법률 검색·분석 시스템 등이 등장하였고, 필자가 속한 로펌을 비롯한 다양한 로펌에서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변호사 뿐만 아니라,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직종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고, 실제 AI는 방대한 판례 리서치, 초안 작성, 법령 및 법리 분석 등을 통해 변호사들의 업무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하고, 판례·법령을 검색하며, 일정한 패턴을 도출하는 데 탁월하다. 변호사가 직접 수십 권의 판례집을 넘기며 사례를 찾던 시절에 비하면, AI는 몇 초 만에 유사 판례와 사건해결을 위한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계약서 초안이나 표준화된 서식의 작성, 반복적인 법률 검토 작업에서는 이미 변호사들의 강력한 보조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단순한 법률문서는 곧 AI가 작성하고, 변호사는 점차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는다.

그러나 과연 AI가 인간 변호사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AI의 역습으로 법조계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 변호사의 역할과 존재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대체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변호사 역할의 핵심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변호사가 하는 많은 업무 중 의뢰인들과 소통하는 것, 의뢰인의 억울함을 이해하는 것은, 완벽한 서면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변호사와 법률상담을 하면서 자신의 억울함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토로하면서, 후련함을 느끼고 정신적인 부분에서까지 치유되는 감정을 느끼시는 의뢰인분들이 많다.

AI라면 도저히 수행하지 못할 소송이 실제 존재한다. 필자가 맡은 형사사건 중 1심과 2심을 모두 패소하시고 상고심을 고민하시던 분이 계셨다. 필자는 1심과 2심에서 치열하게 증인신문을 하였고, 다른기관에 증거신청을 하는 등 변호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였음에도 패소하였기에 더 이상 의뢰인분께 상고심을 권하지 않았다. 도리어 대법원 판례나 상고심의 높은 기각률을 고려할 때, 승소할 가능성이 정말 낮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처음 의뢰인분은 필자의 의견에 따라 상고심 제출을 하지 않는 것으로 하셨다가, 상고장 제출말일 3일전부터 수십차례 전화를 하시어 결국 끝까지 다퉈보겠다고 하셨다. 결국 이 사건은 패소하였지만 의뢰인은 “끝까지 열심히 다퉈주셔서 고맙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봐서 너무 후련하다”고 감사의 뜻을 필자에게 전하셨다. 과연 AI였다면 이 사건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AI의 방대한 정보와 패턴에 따른 분석에 의하면 이 사건은 도저히 승소할 수 없는 사건에 해당하므로, 시도조차 못하게 하지 않았을까?

또한, 사건을 수행하다 보면 사건이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최초 수임시 전략을 짜고 철저하게 준비를 하여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실관계가 드러나고, 의뢰인이 취하 결정을 한다거나, 조정이 되는 등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도 많다. 어느 한 사건도 완전히 동일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사한 사건이라도 당사자간 관계, 배경 등에 따라 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고, 의뢰인의 상황이나 재판부에서 판단하시기에 공평의 관점에서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단순한 법률정보의 조합이나 패턴 분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의뢰인의 사건이 AI에게는 같은 패턴의 방대한 사건 중 한 사건에 불과하지만, 의뢰인에게는 인생을 집어삼킬 정도로 중요한 단 하나의 유일한 사건이고, 담당 변호사로서는 의뢰인의 두려움과 억울함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온 힘을 다하여 변론해야 하는 과제이기 때문에 기계적인 사건수행 이상으로 의뢰인에게 이입된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단순히 법률문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AI는 텍스트 데이터에는 능하지만, 인간관계의 미묘한 뉘앙스와 사건이 가진 당사자간의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사건을 수행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AI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AI가 변호사를 대체한다”가 아니라 “AI가 변호사를 보조한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AI는 변호사의 시간을 절약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줄여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변호사는 더 많은 에너지를 전략구성, 가치판단, 의뢰인과의 소통에 집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AI의 발달은 변호사의 소멸이 아니라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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