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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권혁순칼럼]‘물의 계급화’…강릉 가뭄이 보냈던 신호

지자체- 정부-정치권, 실질 종합 대책 못 내놔
여야, 민생 법안조차 흥정 대상으로 삼고 있어
스스로 돌아보는 데서 국민 믿음 회복해 나가야

강릉 오봉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모습을 목도 했다. 바싹 마른 물 바닥 위로 갈라진 저수지 바닥은 단지 가뭄의 풍경이 우리 사회의 무능과 무책임이 투영된 현장이다. 강릉 시민들은 물을 구걸하듯 급수차를 기다리고, 생수 한 병에 기대야 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은 자연재해다. 그러나 그 피해를 키운 것은 인간이었다. 지난 세월 강릉의 물 부족은 예고됐다. 오봉저수지와 광동댐, 소양강댐의 수위가 빠르게 낮아지는 조짐은 이미 오래전에 관측됐다. 그럼에도 자치단체는 물론 중앙정부도, 강원특별자치도도 선제적인 조처는커녕 기초적인 위기 대응 로드맵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사후 약방문처럼 소방차를 불러오고 군 병력을 투입하는 모습을 보며 시민들은 되묻게 된다. "왜 미리 준비하지 않았는가?" 그 물음은 단지 강릉시만이 아니라 이 나라 행정 시스템 전체를 향하고 있다.

정쟁에 파묻혀 민생을 외면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은 정쟁에 파묻혀 민생을 등진 상태다. 여야는 민생 법안조차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강릉 가뭄과 같은 실질적 위기가 벌어져도 국회는 여전히 국정감사 일정 핑계로 본회의를 열지 않는다.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응급의료법 개정안), 도서·벽지·농어촌 어린이집 지원이 핵심인 영유아보호법,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등 처리는 하루가 시급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들 법안이라도 처리하자고 제안하지만, 국민의힘은 '입법 독주' 를 운운한다. 정치는 왜 존재하는가? 권력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 근본을 망각한 채 정파적 유불리만 계산하는 정치 앞에서 민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번 강릉의 극심한 가뭄은 헌법적 위기다. 유엔은 2010년 '물에 대한 접근권'을 기본 인권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 헌법도 제10조에서 인간의 존엄을, 제34조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강릉 시민은 한 때 '물'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광동댐, 소양감 댐 등 수많은 대형 댐이 위치한 지역이다. 수도권에 물을 대기 위해 건설된 댐 바로 아래에서, 그 물을 만들기 위해 수몰당했던 주민의 후손들이 급수차를 기다랴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헌법적 모순이자, 국가적 불공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불균형이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수자원 정책은 여전히 중앙집중적이다. 강원특별자치도의 물은 수도권 산업단지로 향하고, 강릉 시민은 전국 자치단체 및 주민이 지원해주는 생수로 버텨야 했다. 정부는 용인 반도체 단지를 위해 화천댐 물을 끌어다 쓸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강릉의 물 부족 사태에는 종합적 대응책 하나 없다. 이는 '물의 계급화'다.

지방은 생존 위해 물을 구걸

수도권은 잉여 물로 잔디를 가꾸고, 지방은 생존을 위해 물을 구걸한다. 물이 권리가 아니라 자원이 되어버린 이 현실은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에 대한 전면적 도전이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물에 대한 접근을 헌법적 권리로 명문화하고, 물 관리 정책을 환경부 단독이 아니라 국무총리실 직속의 통합 기구로 격상시켜야 할 때다. 지역 맞춤형 분권형 수자원 관리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강릉은 강릉답게, 강원자치도는 강원자치도답게 물을 관리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할 때다. 빗물 저장, 폐수 재활용, 해수 담수화 등 다원적 수자원 전략을 병행해야 하고, 정치권은 민생법안을 정쟁에서 분리해 상시처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여야 모두 '물' 앞에서는 정파가 아니라 국민을 봐야 한다. 강릉의 이 사태를 단순한 자연재해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물은 생존이며, 권리다.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은 물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강릉 시민이 겪은 고통은 대한민국이 맞이할 미래의 축소판일지 모른다. 이 위기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다음 위기는 더 깊고 치명적일 것이다. 자치단체와 정부, 여야는 추석 이후 민심을 정확히 읽고 스스로 돌아보는 데서 국민 믿음을 회복할 길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자기정치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며 누구에게나 신뢰를 보일 때 에만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런데 거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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