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90만
기고

[강원포럼]깨끗한 정치, 시민의 후원금서 시작

김정곤 도선관위 사무처장

정치는 국민의 삶을 바꾸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다. 그러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자금’이라는 연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선거를 치르고, 정책을 연구하고, 지역민의 의견을 듣는 모든 과정에는 비용이 든다. 정치자금은 단순히 후보자의 활동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에너지이자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통로이다. 문제는, 정치자금이 불투명하거나 소수의 큰 자금에 의존하게 될 때 정치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한국의 정치자금 제도는 과거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들을 거치며 크게 변화해왔다.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기업의 후원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개인의 소액 후원 중심으로 제도가 전환되었다. 이는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고, ‘돈 정치’를 막기 위한 진일보한 조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정치자금이 부족해 후보자들이 빚을 지거나 사재를 털어 선거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정치가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변질될 위험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정치자금의 투명한 조성과 시민 참여 확대는 정치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핵심 조건이다. 정치자금이 기업이나 특정 집단이 아닌 시민들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조성될 때, 정치인은 자연스럽게 국민의 눈치를 보게 되고 정책은 공익을 향한다. 다시 말해, “정치자금의 출처가 곧 정치를 결정한다.” 소수 기업의 거액 후원금이 사라지고 다수 시민의 소액 기부가 늘어날수록, 정치는 권력의 논리가 아니라 민심의 논리에 가까워진다.

오늘날 정치자금의 공백은 단지 자금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이 정치와 거리를 두고 ‘정치혐오’에 빠진 결과이기도 하다. 정치인에게 돈을 후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문화는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선진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한다. 예컨대 미국은 전체 선거자금의 절반 이상이 200달러 이하의 소액기부로 이루어지며,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정치 후원금은 시민 정치참여의 일상적 수단이다. 시민이 기부를 통해 정치에 관여할 때, 정치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된다.

정치자금 후원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참여의 또 다른 형태다. 투표가 한 표로 의사를 표현하는 참여라면, 후원은 정치활동을 지속적으로 지탱하는 참여이다. 특히 청년, 여성, 정치 신인처럼 정치적 기반이 약한 이들이 성장하려면 시민의 후원이 절실하다. 후원금은 그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후원하지 않는 정치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강화되어 있다. 모든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공개되며, 후원 내역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은 연간 1인당 최대 2,000만원까지 후원할 수 있다. 10만원 이하의 소액기부에는 100%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지고, 10만원을 초과하는 기부금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즉, 시민은 세금으로 환급받으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셈이다.

이제 정치자금 후원은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의무로 인식되어야 한다. 깨끗한 정치를 바란다면, 정당과 정치인을 감시하는 것만큼이나 그들에게 정당한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투명한 정치자금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거액이 아니라 시민 한 사람의 1만원이 정치를 지탱하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국민주권의 실현이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